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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제를 가르치는 교육(대담)|구미의 대학생활을 통해 알아본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최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간이 스스로를 절제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크게는 욕망의 끝을 모르는 국가간의 전쟁, 작게는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이 빚어내는 갈등 등 헤아릴 수가 없겠지요. 이같은 의미에서 인간이 참되게 사는 방법과 그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구미의 경우는 교육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인간수련의 실제 경험을 쌓고 있다고도 생각이 됩니다.
박=「프랑스」와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자율적이건 타율적이건 항상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규칙을 요구하고 그에 따르려는「디시플린」(수련)의 자세가 누구에게나 스며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로 미국대학의 경우, 대부분의 시험이「오너·시스템」이라는 무 감독 시험제도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아무도 시험감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책·「노트」등을 참조해 시험답안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이를 절제하고 참아 내는 것이지요.
김=영국의 경우는 각급 학교의 선택에서부터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절제가 엿보입니다. 11세가 되면 인문학교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기 위해「일레븐·풀러스」라는 지능「테스트」시험을 치릅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이 결정되지만 우리나라처럼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두뇌가 좋건 나쁘건 무조건 중학·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습니다. 학생의 의사에 따라 본인이 스스로 원하면 진학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영국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뿐 아니라 무조건 진학하지 않는 자제심을 익히기도 합니다.
박=우리나라 대학생들도 많은「리포트」가 요구되지만 제가 있는 대학에서는 한 학기에 평균 3회 이상의「리포트」가 제출됩니다. 교수는 모든「리포트」에 대해 조언과 충고를 해줄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읽고 고쳐 주게 됩니다. 한편 학생들은 교수의 충고 부분에 대해 매번 무릎을 맞대고 토론을 하지요.
이때 교수와 학생은 인간대 인간, 인격대 인격의 예리한 대면을 하게 됩니다. 이 같은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교수로부터 인간성을 배우는 계기를 삼게 되지요. 비록 성직자들처럼 특별한 의식은 없지만 평소 교수와의 대화,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는 것입니다.
김=그 같은 제도는 영국에서「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 등 이 전통적으로 해 오고 있는「튜터」(개인교수)제와 비슷하군요. 영국의 대학생들은 미국대학생과는 달리 강의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1주일에 3회 정도 담당교수를 만나는 것이 전부지요. 그 밖의 시간은 혼자서 공부를 합니다.「튜터」는 학생 개인의 학문적인 도움은 물론 인간으로서도 성숙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지요. 이 같은「튜터」들의 지도 때문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튜터」와 함께 행동하며 미래에도 자기절제를 할 수 있는 이른바「영국의 신사」로 성숙되는 것 같습니다.
박=영국의 학생들이「튜터」등을 통한 철저한 공부중심인데 반해 미국의 학생들은 좀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대학이 교양을 넓히는 곳으로 인식돼 있습니다. 전공공부는 대학원에서 주로 하지요. 따라서 학생들은 교양을 쌓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부를 많이 하려는 풍조가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다음학기 수업료도 벌고 자기와 다른 사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지 알고 싶다며 휴학하는 학생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휴학하는 동안 일본·인도 등지로 여행, 불교의 선 등을 배워 오는 학생도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관조하려는 태도가 뚜렷이 나타나지요.
김=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을 고시나 취직을 위해 다니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겠습니다. 영국의 대학생들도 졸업 후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각 대학의「클럽」활동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기모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개의 대학생들은 수백 개의 대학 내「서클」중 1, 2개에 가입, 주로「서비스」정신을 익힙니다. 또 방학 때는 고아원·불구자들을 위한 봉사단체를 조직,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영국의 대학생들이 자아발견을 할 수 있는 곳은 영국 각지에 있는 값싼 「유드·호스텔」과 교회가 운영하는 수련원(리트리트·하우스)을 통해서입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구미에서 온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인간경험의 폭을 넓히지요.
박=「프랑스」의 경우도 학생들이 봉사단체를 조직하거나 성지순례 등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같은 점은 우리나라 대학생도 여건만 허락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방학이 되어도 취직시험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긴 하지만 틈을 내 한번 쫌은 자기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여행이나 독서를 해보도록 꼭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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