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치과 버스 탄 어린이 1000명, 환한 웃음 찾았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 주지훈 치과의사가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5억원짜리 자동차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상상이 돼나요. 제트 엔진이 달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평소에는 자동차, 위급할 때는 로봇으로 변하는 트랜스포머? 지난 4월 6일, 소중 학생기자들이 보고 온 5억짜리 자동차는 ‘행복한 미소를 만드는 자동차’입니다. 5억짜리 치과 버스를 만들어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의료 봉사를 하는 주지훈(43) 치과의사를 만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해 치과의사를 선택했어요.”

일요일 아침부터 우는 아이를 달래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주지훈 치과의사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경제적인 안정을 이유로 직업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악착같이 공부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합격했고 번듯한 치과병원 원장이 됐다. 경제적 안정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 사랑하는 가족까지 얻었다. 어릴 적,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던 모든 것을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경쟁해서 남을 이기고 내가 얻으면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그런 성공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남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짜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 그는 새로운 일을 벌이기로 작정하고 치과의사 5명과 모임을 만들었다. 치과 서비스를 개선하자는 것부터 믿을 수 있는 구강제품을 직접 제작하자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오고 갔다. 그 중 하나가 치과 버스였다. 치과 버스를 실행에 옮긴 건 2010년. 먼 거리에 있는 사람도 쉽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구강상태를 점검하는 ‘검진’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한 봉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생각 끝에 이동식 치과병원, 치과 버스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치과 버스 제작은 쉽지 않았다. 처음 물망에 오른 차는 봉고였다. 구하기 쉬웠고, 운전하기에도 용이했다. 하지만 검진이 아니라 치료를 하려면 치과 의자를 비롯한 의료장비들이 필요했고 그런 장비들을 넣기에 봉고는 너무 작았다. 마을 버스는 턱이 높아서, 일반 버스는 치과 의자가 1대밖에 들어가지 않아 어려웠다. 고심 끝에 찾은 버스가 바로 리무진 버스였다.

리무진 버스는 치과 의자가 두 대 들어가고 치료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앉아 있을 여유 공간도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치과의사들이 주도해 버스를 개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치과 버스 운영계획서’를 만들어 버스 후원 기업들을 찾아 나섰고 SK플래닛에서 후원을 받았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의료장비들은 의사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었다. 드디어 계획을 세운 지 3년 만에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Happy Smile Dental Bus)’가 완성됐다.

“봉사가 치과의사들만 모여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운전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현장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줄 진행요원도 필요했습니다. 기름값이나 주차비용 같이 정규로 발생하는 비용도 확보해야 했어요. 일이 점점 커지면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하는 후회도 들었어요. 일일이 섭외하러 다니는 일이 힘들었거든요.”

2 치과 버스 안에서 다문화가족 아이를 진료하고 있는 주 의사.

3 주 의사를 취재 중인 박시후(왼쪽)·박서현 학생기자.

버스만 완성되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일은 점점 늘어났다. 가장 시급한 것은 비용에 대한 재원 확보와 운전이나 현장에서 진행을 도와줄 운영팀이었다. 치과의사가 고소득자라고 해도 매번 발생하는 비용을 다 부담하기 어려웠다. 또 그렇게 운영하다가는 지속적으로 봉사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 버스 운영 시스템이 필요했고 어린이 치약과 칫솔을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어 수익을 치과 버스를 운영하는데 쓰기로 했다. 첫 해에는 수익의 전부를 치과 버스에 쏟았다.

2012년 4월 부천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는 것으로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봉사인원이 부족해 방문하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까지 총 동원됐다. 차츰 치과 버스가 알려지면서 진료를 돕겠다는 치과의사들도 늘고, 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기업 후원도 이어졌다. 운영이 안정화되면서 혜택을 받은 아이들도 점점 늘었다. 현재까지 1000여 명의 아이들이 치과 버스에서 진료를 받았다.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 운행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함께한다. 센터에서 방문할 지역을 정하고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약을 받으면 치과 버스가 해당 지역으로 출동한다. 버스는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운행하고 한 지역을 두 번 방문한다. 소외계층 아이들은 어른의 보살핌이 부족해 구강 상태가 엉망이 경우가 많아 1차 치료를 하고도 결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주 치과의사는 “치아는 어릴 적에 잘 관리해야 건강에 좋아요. 소외계층 중에서도 아이들 치료에 전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이라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전국적으로 200여 개가 있어요. 이 중에 1년 동안 치과 버스가 가는 곳은 10곳밖에 안 되죠. 더 많은 지역을 찾아갈 수 없어서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박시후ㆍ박서현 학생기자의 주지훈 치과의사 인터뷰

4월 6일 오후 1시. 경기도 광명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앞에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happy smile dental bus)’가 자리를 잡았다. 다문화가족 아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삼삼오오 몰려들고 있었다. 버스 안은 치료가 무서워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과 아이를 달래며 치료를 하는 의료진들로 북새통이었다. 봉사를 마치고 나온 주지훈 치과의사를 박시후ㆍ박서현 학생기자가 인터뷰했다.

-(박시후) 독거노인이나 장애우 등 소외계층들이 많은데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나요.

“소외계층의 자녀가 더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했어요. 아이들은 치과를 무서워 해 아프다고 스스로 병원을 찾지 않아요. 그래서 어른들의 관심에 따라 아이들의 구강 상태가 달라지죠. 또 치과는 어려서부터 관리를 잘하면 커서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박서현) 치과 버스에서 보니 우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아이를 달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치료 끝내고 맛있는 것 먹자고 달래기도 하고 자꾸 울면 마취주사 놓는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죠(웃음). 막상 치료에 들어가면 빨리 끝내기 위해 약간은 강제적으로 진료해요. 근데, 그 치과 치료가 그렇게 아프지 않거든요. 아이들도 아파서 울기보다는 무서워서 우는 경우가 더 많죠. 아이들이 겁먹지 말고 치료를 잘 받았으면 좋겠어요.”

-(박서현) 의료봉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환자가 기억에 남기보다 상황이 생각나요. 치과 버스는 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이런 아이들 대부분이 치아 상태가 안 좋죠. 진료비가 걱정돼 많이 썩어도 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이런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가난은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닌데 말이죠.”

-(박시후) 어릴 적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어려서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이나 이웃 분들이 도와주셔서 공부도 잘하고 또 계속 할 수 있었던 같아요.”

-(박서현) 주말마다 봉사하러 다니면 가족들이 불만을 갖진 않나요.

“처음에는 안 놀아 준다고 불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빠가 좋은 일을 한다며 뿌듯해 해요. 옆에서 도움도 많이 줍니다. 또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아빠랑 놀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친구랑 노는 것을 더 좋아하죠. 딸은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거든요.”

-(박서현)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치과의사가 되려면 치과 대학을 가야해요. 공부를 정말 잘해야 하죠. 근데, 공부를 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입 안에 손을 넣고 미세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체력도 좋아야 해요.”

-(박시후)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치과 버스를 2~3대 더 만들어 봉사지역을 더 넓힐 계획이에요. 치과 버스는 추운 겨울에는 수도관이 파열해 운행하기 어렵거든요. 1년에 8개월만 운행을 하죠. 더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요. 지금은 계획 단계에 있지만 치과 버스를 늘려 많은 더 많은 소외계층 아이들이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학생기자 소감
“치과 버스가 신기했어요. 외관은 그냥 버스인데 안에는 치과 의자와 의료기구들이 가득했죠. 또 선생님들이 너무 친절해서 나도 진료를 받을 싶을 정도였죠.” 박시후(경기 수지 신리초 5) 학생기자

“어려운 환경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 치과의사가 됐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치과 버스를 만든 주 선생님이 너무 멋있었어요. 나도 선생님처럼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박시현(인천 신정초 5)학생기자

주지훈 치과의사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왔다. 삼성의료원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삼성치과 대표원장이다. 2009년 8월 서울대 치과대학 출신 400여 명이 모인 치과의사 그룹 제니튼을 설립해 치과 서비스 개선과 올바른 구강건강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치약, 치아보강제 같은 구강건강용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글=황정옥 기자 동행 취재= 박시후(경기 수지 신리초 5)ㆍ박서현(인천 신정초 5) 학생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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