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터벅터벅 마운드로 걸어 나왔다. 익숙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호리호리한 몸도 그대로였다. 13일 SK와의 대구경기는 삼성 임창용(38)에게 2382일(2007년 10월 5일 부산 롯데전 이후) 만의 국내 등판이었다. 8회 초 1사 만루, 스코어는 8-8 동점이었다.
임창용의 첫 상대는 SK가 내보낸 대타 스캇(36)이었다. 7년 만의 국내 복귀전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135홈런을 기록한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건 커다란 부담이었다. 임창용은 힘껏 초구를 뿌렸다. 스캇의 무릎을 파고드는 몸쪽 낮은 직구였다. 스캇은 직구를 노렸지만 방망이가 헛돌았다. 임창용은 스캇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내준 뒤 김성현을 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0-6까지 밀렸던 SK는 8회 5득점에 성공하며 9-8로 역전했다. 삼성도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8회 최형우의 볼넷과 박석민의 동점 2루타, 박한이의 투수 땅볼로 10-9로 재역전했다.
임창용은 자신의 승리를 ‘세이브’하기 위해 9회 초 다시 등판했다. 시속 143~147㎞의 직구는 뱀처럼 휘어들어왔다. 스피드는 전성기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움직임이 워낙 좋았다. 게다가 임창용은 사이드암-스리쿼터-오버핸드를 오가는 3가지 폼으로 던졌다. 타석에 선 SK 타자들은 삼성 포수 이흥련에게 “이게 무슨 공이냐”고 묻기도 했다.
임창용은 이명기를 3루 땅볼, 조동화를 2루 땅볼로 잡은 데 이어 직전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때려낸 최정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6~8회 8점을 뽑았던 SK 타선이 임창용을 상대로 5명 중 한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다. 1과3분의 2이닝을 완벽하게 막은 임창용은 2408일(2007년 9월 9일 잠실 LG전 이후) 만에 국내 프로무대에서 승리 투수가 됐다.
임창용다운 복귀전이었다. 예전처럼 160㎞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지 못해도 그는 자신의 직구를 믿고 던졌다. 지난 11일 1군 엔트리에 진입한 그는 “복귀전 초구도 직구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임창용은 해태 데뷔전(1995년 6월 18일 삼성)에서,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데뷔전(2008년 3월 28일 요미우리)에서 초구를 직구로 선택했다.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지난해 메이저리그 데뷔전(9월 8일 밀워키)에서도 첫 타자 존 할튼에게 빠른 공부터 던졌다. 정면승부를 즐기는 그가 한국-일본-미국 4개 팀에서 뛰면서 던진 초구는 늘 직구였다.
11, 12일 SK에 2연패를 당했던 삼성은 돌아온 수호신 덕분에 1승을 따냈다. 임창용은 “첫 등판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던질 수 있었다.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3연승’ NC, 단독 선두=NC는 잠실 LG전을 싹쓸이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NC는 4-4로 맞선 연장 12회 초 이종욱의 2루타와 권희동의 희생번트로 1사 3루를 만든 뒤 이호준이 중전안타를 쳐 결승점을 뽑았다. 4연패에 빠진 LG는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대전에서 넥센은 고졸 신인 하영민(19)의 호투에 힘입어 4-2로 이겼다. 선발 5이닝 동안 3안타·2볼넷을 내주고 1실점한 하영민은 역대 다섯 번째로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낸 고졸 투수가 됐다. 롯데는 광주에서 KIA를 6-3으로 이겼다.
글=김식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프로야구 전적 (13일)
▶ 잠실 NC 5-4 LG(12회) ▶ 대구 삼성 10-9 SK
▶ 대전 넥센 4-2 한화 ▶ 광주 롯데 6-3 K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