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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세상탐사] 기업가 정신에 대한 오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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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31면

한국에서 기업인에 대한 평가는 이상할 정도로 분열돼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세계 1등 품목을 여럿 내놓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들을 배출했다. 국민 대부분이 기업활동과 연결돼 생계를 꾸린다. 그렇지만 기업인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재벌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정경유착을 통해 사업을 키웠고, 세습에 혈안이 돼 있으며, 중소기업들을 착취한다”는 정형화된 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외국 기업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국에는 잡스 추모 열풍이 불었고 정부에서도 ‘잡스 같은 인재 키우기’를 정책으로 내세웠다. ‘가치투자의 귀재(鬼才)’ 워런 버핏을 존경한다는 사람들도 꽤 된다. 외국의 성공한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인들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외국 기업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국내 기업인들이 그들과 비교할 때 어떤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작업은 별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잡스의 전기(傳記)에 나와 있는 내용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잡스는 사생아로 버려졌던 그를 헌신적으로 키워준 양부모를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대학 내내 히피 생활을 하며 가족이 없는 듯이 행동했기 때문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게 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샤워를 거의 하지 않고 회사에도 맨발로 갔다.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해 변기에 발을 집어넣은 적도 있었다. 그의 몸에서 냄새가 너무 나서 직장 동료들이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보이콧하기도 했다.

셋째, 애플의 창업동지 워즈니악을 속였다. 컴퓨터 부품을 판 뒤 50대 50으로 나누기로 했지만, 공식 납품 가격만 나누었고 인센티브로 받은 것은 혼자 먹었다. 워즈니악은 10여 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넷째, 스톡옵션도 조작했다. 애플에서 쫓겨난 뒤 다시 복귀하면서 잡스는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애플을 회생시킨 뒤 거액의 스톡옵션을 요구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주식가격이 스톡옵션 행사가격 밑으로 떨어졌다. 잡스는 스톡옵션 받은 날짜를 사후적으로 조정(backdating)했다. 이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사회적 문제가 됐지만 잡스는 다행히 처벌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회계담당자가 처벌받았고 애플은 소송을 건 주주들에게 1400만 달러(약150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줘야 했다. 현재 한국의 회계법을 적용하면 잡스와 다른 이사회 임원들도 처벌받아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렇게 도덕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는 기업가로 남아 있다. 혁신적 제품의 개발, 디자인에 대한 열정 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 잡스와 같은 기업인이 있었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지금의 분위기를 볼 때에는 그가 이룩한 혁신은 뒷전으로 다 밀리고 잘못만이 언론을 도배했을 것 같다. 돈 잘 버는 회사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전문경영인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잡스 같은 잘못을 했다가는 거의 생매장당하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흠결 많은 외국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열광하면서 내국 기업인들에겐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 같다.

혁신 연구의 대부 슘페터는 기업가들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혁신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욕심이 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월급쟁이로 만족한다. 그러나 욕심이 강한 사람들은 이것을 채우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진행된다. 슘페터는 이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기업가들의 혁신적 행위를 북돋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돈 많이 버는 것에 대해 관대해져야 한다. 그들의 ‘탐욕’을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그것이 생산력 향상을 위해 분출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들이 위험을 부담했던 점을 인정해주고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더 큰 위험을 부담하며 혁신을 이루어내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그들을 잡스와 같은 ‘영웅’으로까지 추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도덕적 행위까지 옹호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국내 기업인들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본질적으로 그다지 깨끗한 것이 아니다. 도덕군자의 잣대로 재단하면 기업가 정신은 죽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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