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증가 25%와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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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반기의 경제적인 성과가 당초 예상보다 월등히 호전되고 있어 정부는 올해 성장목표 7∼8%를 11%로 대폭 수정했다.
수출수요가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급속히 증가함으로써 연간 목표를 초과 달성할 전망이 확실해진 이상, 우리의 실정에서 경제적인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상향 조정의 이유다. 확실히 외환 애로에서 탈출하는데 숱한 고생을 한 경험으로 보아 우리로서는 외환 수입 증대의 기회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성장률을 상향조정하더라도 물가는 목표보다 더 올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므로, 정책이 의도하는 대로 실천될 수만 있다면, 성장률을 높인다는데 이론을 제기할 여지는 없다.
그러므로 물가를 전혀 자극하지 않고서 성장률을 3%나 올린다는 가정 자체가 정책조정의 타당성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준에 문제점이 개재되고 있다면 정책의 외견과 실지 목표는 이중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률을 3% 올리고, 이를 지원키 위해 통화량 증가율을 5%나 늘리지만 물가는 당초 목표대로 10% 에서 안정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물가 상승률을 어느 정도 자극하더라도 일단 수출과 성장의 기회는 충분히 이용하겠다는 것이 정책수정의 진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일단 허가 해두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물가를 희생시키더라도 수출증대와 성장을 꼭 높여야만 할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선택이 장기적으로 최선의 것이냐에 있다.
물론 통계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연간 물가 상승률을 당초 계획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기술적인 요소는 있다. 행정력으로 개별 가격 인상을 억제하더라도 기업의 잠재력을 이용한다면 적어도 연내에는 문제가 노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정상적으로는 통화량 증가가 물가에 파급되는 시차가 6개월 내지 1년이 걸릴 것이므로 연내에는 성장률을 높이거나 통화량을 증가한다 해도 그것이 물가지수에 파급되지 않는다는 계산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계산만을 따진다면 수입 원자재 가격의 급속한 상승이 없는 한 정책수정으로 파생하는 모순은 별로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계적인 시차 기준으로만 정책을 다루는 것이 결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올해의 성과가 77년의 물가 정세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꼭 연말기준으로 정책을 다루어야 하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는 경향으로 보거나 수출은 늘고 수입은 정체해서 재고 수준이 감소하는 국내동향으로 보거나, 정책 수정 여부에 불구하고 하반기의 물가 정세는 상반기보다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률과 통화량 증가율을 높이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공산이 짙다하겠다.
한편 정책조정이 외환 적 측면에 시사하는 점이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조정된 무역수지는 수출입을 모두 5억「달러」씩, 같은 규모로 증가시키고 있는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깊이 음미할 가치가 있다.
투자 확대를 위한 시설재 도입을 뜻하는가, 아니면 내수용 수입을 늘림으로써 통화 창조기능을 확대시키고 있는 외환부문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인가, 분명하지 않다. 전자의 경우는 물가를 자극치 않을 수 없고, 후자의 경우는 외환문제를 대가로 안정 요인을 강화시키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밖에도 그 동안 잠식했을 재고를 보전키 위한 수입의 증가를 뜻할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이건 수입 증가의 폭과 수출증가의 폭이 같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분명치 않은 대목이다.
요컨대 정책수정이 불안정 요인을 자극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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