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2백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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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776년7월4일 「아메리카」 대륙 회의 의장 「존·핸코크」는 「펜」을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만하면 「조지」 3세도 안경을 쓰지 않고 알아볼 수 있겠지?』 그는 방금 13개 식민주의 대표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가결한 「아메리카」 독립 선언서에 서명을 끝낸 것이다.「조지」 3세는 그들을 통치하던 영국 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선언서는 당시 33세의 「토머스·제퍼슨」이 2주간에 걸쳐 초고한 것을 70세의 「벤저민·플링클린」이 손질한 것이었다. 청년의 정열과 노인의 지혜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독립 선언서는 「프랑스」 혁명이 낳은 「인권 선언」과 함께 인류 최대의 자유 헌장이기도 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생명이나 행복이나 자유에 있어서 원래 인간은 평등한 권리가 있다.』
그 첫 구절이 벌써 서정시를 읽는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의 장은 그렇게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조지·워싱턴」이 이끄는 「아메리카」 독립군은 l5개월을 두고 혈전을 치렀다. 영국군의 「콘워리스」 장군이 백기를 든 것은 1777년10월11일이었다.
「조지·워싱턴」은 그후 고향인 「맨트·버논」의 전원으로 돌아갔다. 한 촌부의 생활로 만족한 것이다. 그후 11년. 1789년 봄 「뉴요크」에서 이 시골로 한 사자가 달려 왔다. 그는 무슨 서한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당신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읍니다.』
세계의 최강국, 세계의 최부국, 세계의 상승국, 미합중국은 이렇게 역사의 제2장을 펼쳤다.
1876년, 독립 10년 축제가 열리던 날 미국에선 처음으로 세계 전람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바로 독립 선언이 낭독되던 곳이었다. 「벨」이 발명한 전화기가 첫선을 보인 것도 이 박람회에서였다. 그 무렵 미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고 철강업이 기세를 올리고, 또 석유 개발도 궤도에 올랐다. 미국은 1백년 전에 벌써 세계의 국가가 되었다. 건국의 이상이 눈부시게 빛을 낸 것이다.
그와 같은 미국의 뒤에는 실로 무서운 것이 있었다. 윤리적인 청교도 정신. 그것은 곧 개척의 원동력이었으며 미국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모든 사람의 신앙이었다.
4일은 바로 독립 2백주년을 맞는 날이다. 오늘의 「아메리카」는 지난 1백년 때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것 같다. 화성 탐험 등 획기적인 「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림자가 있다. 도덕적인 퇴락은 오늘의 「아메리카」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 국가의 위대한 발전사를 보면서 실로 많은 교훈을 생각할 수 있다. 「아메리카」야말로 앞으로 어떤 작품의 국가가 될지는 더욱 인류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위대한「아메리카」는 위대한 역사 속에서만 위대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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