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응 저 우리말과 글의 내일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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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선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평자의 소득이며 문반생활에서 궁금하던 것을 자상하게 풀이해준 적이 많았다.
이 책의 내용은 그 표제가 보여주듯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할 것인가 그 길잡이의 구실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는 자연에 대한 개념인 만큼 말의 발달도 자연적으로 우연하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말을 다듬는 인간의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소리의 연결이 아름답게 조화되고 말의 가짓수가 폭넓고 풍부하며 표현방식이 논리적으로 세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과 글은 꼭 문화발달의 정도를 재는 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말을 표기하는 글자와 글이 없이 말의 발달을 기억할 수 없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의 완전한 글자는 530년전 훈민정음의 창제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말은 있되 글자가 없어 어렵고 어색한 중국의 글자를 빌려 써왔기 때문에 우리말을 다듬어 볼 기회도 없었다. 그 후에도 한문의 인습을 버리지 못한 소수 지배층의 지식인 때문에 그 뛰어나게 오묘하고 합리적이며 쉽고 편리한 소리글자가 밑바닥에 깔려 우리의 말과 글이 충분하게 다듬어 질 수도 없었다.
갑오경장 이후 공문서와 교과서에 국한문을 섞어 쓰고 선각자들에 의해 한글만을 쓰자는 운동과 그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그후 해방은 우리말과 글을 급속하게 발전시켜 많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채 면목을 일신케 했을 뿐 아니라 나라의 정책으로 공문서와 교과서에까지 한글만을 쓰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정책이 흔들리고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저자는 여기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철저한 한글전용의 기수로서 이론을 전개한다. 그렇다고 고전으로서의 한문학습은 배제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국 애족의 선각자들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을 소개하면서 우리말에 소화될 수 없는 일본어·영어 등 외래어와 빗나간 말들의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는 순화운동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말과 글 자체를 다듬는 적극적인 작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젯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소리의 연결이 조화되고 발음이 통일되어 있는가, 둘째 풍부한 말 가짓수를 가졌는가. 세째 표기법이 합리적이고 글자의 모양이 아름다운가 등이다.
우리나라 문화의 높은 비약을 위하여 말과 글의 다듬기가 얼마나 절실한 것임은 국어학자나 문필가만이 아닌 우리 겨레 전체의 일인 것이다. 이 책을 한번 읽음으로써 우리말과 글의 내일을 밝게 하기를 바란다. 저자는 서울대교수·한글학자. <이관구(언론인·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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