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섭<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관악「캠퍼스」로 옮겨 온지도 벌써 1년 남짓이나 되었다.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너무 거리가 멀고 환경이 어수선하여 낯설게만 여겨졌는데 이제는 제법 정이 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 통근차를 타고 먼길을 오노라면 자못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일단「캠퍼스」에 들어서면 대자연 속에 파묻혀 속세를 잊게되고 연구실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관악「캠퍼스」로 옮긴 후 나로서는 오히려 현세의 정신적 진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선감에 만족한다.
요새는 세상사람들의 인정이 각박해졌다는 말들을 한다. 너무 이해타산만을 따지고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정이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복잡한 현대물질 문명에서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생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약삭빠른 아욕에의 집착은 어쩐지 우리들 마음속에 삭막한 바람을 일게 한다.
이러한 세속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말하자면「캠퍼스」인 셈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보고 노장적인 청담 사상에 젖어 있다고 비웃을지 모른다. 고려시대에 일부 문인들 사이에 청담의 풍이 풍미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12세기 후엽에 이인로·오세재 등 7명의 문인이 진대의 죽림칠현을 본떠「죽림고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시가와 음주를 즐기며 산림에 파묻혀 청담 고론으로 세상을 보낸 것이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너무 현세의 권력에 아부하는 것을 조소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하는 고답적인 기풍을 가졌던 것이다.
이들「죽림고회」외 문인들도 입으로는 청담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벼슬을 얻으려 하였다는 사실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과의 기가 상통하였던 이규보도 불우하였던 시절에는 백운 거사라고 스스로 호할 만큼 노장의 풍이 있었으나 결국은 갖은 수단을 다하여 사환의 길에 올랐음은 그들의 한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청담 문인들이 비록 벼슬을 하면서도 오염된 속세에서 벗어나 초연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의 일면을 간직하였다는 점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어떤 공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렇다고 오늘의 청담이 고려시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고려의 죽림문인들의 청담의 풍에는 다분히 시대를 타지 못한 실의에 대한 울분과 자조가 깃들이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히 현실도피의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고려시대의 죽림사상은 패배자의 감상 어린 자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세속에서 초연 하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진실한 삶을 위한 원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물질문명에 떨어지기 쉬운 병폐를 시정하려는 건설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청담은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세상을 50여년 살아 왔으니 이제는 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 할만 하지만 역시 그러치 못하다.
오히려 세속의 때가 묻을 대로 묻고 세욕에 집착한 나를 가끔 발견한다. 고관을 지내다가 국회의원이 된 동창을 축하하는 모임에 떳떳이 나가지 못할 만큼 옹졸하고 위축된 나였다.
아마 이런 속인이기 때문에 보다 더 초연을 갈구하는 마음이 강하게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도 연구실에 앉아 창 너머 멀리 관악의 푸른 산을 내다본다. 이 연구실은 나에게 속세의 오염을 막아주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자기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