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예술가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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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만년의「르놔르」는 손이 부자유스러워 화단을 손에 묶고서 그림을 그렸다. 이 모습을 보고 어느 사람이 감탄하자「르놔르」는 말하기를『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다.
오원 장승업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한 다음에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만약에 그에게 취안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림은 눈으로 그리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서양화의 사실성과 동양화의 비사실성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기본적인 차이에서 나왔다.
그러나 같은 동양화라도 나라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중국화에는 세밀성이며, 장식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여기 비겨 일본화는 다양한 색채에 특색이 있다. 한편 한국화는 대담한 형태와「디테일」의 생략에 있다.
이렇게 차이는 있어도 동양화는 어느 나라의 것이나 서양에 비기면 매우 추상적이다. 「뷔얄」·「보날」등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이 동양화의 기법을 적극 받아들이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는「드가」·「로트렉」의 후기 작품들에서도 동양적인 선화의 화법에서 영향받은 자국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동양적인 것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가령 미국의「토비」는 동양예술의 세계와 서구예술과를 융합시켜 독창적인 추상세계를 만들어냈다.
동양의 예술가들에 대한 서구예술의 침투도 더욱 심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양화가 중에「모티브」는 물론이요, 화재에 있어서도 서양화에서 쓰는 휘발성 도료를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예술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전통을 과감히 부정해 나아가는데 예술의 생명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얼마 전에「프랑스」예술의 침체를 탄식하면서「누벨·읍세르바톼르」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네 국경 밖에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수용성 없이는「르네상스」는 있을 수 없다. 「프랑스」가 요새처럼 외계로부터의 자극제를 필요로 한 때는 없을 것이다.』
오늘부터 26일까지「워커·힐」에서 제1회 극동예술가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및 미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4개국의 문화와 예술을 비교·연구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이 4개국의 문화예술사이에 가로놓인 이질성만을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의 친화성을 찾아내면서 서로가 내 나라의 문화를 보다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자극을 얻게 되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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