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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게재 집착말고 더 창의적 연구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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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성모 KAIST 총장

지구촌의 모든 과학자들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논문을 싣고 싶어하는 학술지.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다. 하지만 이 저널의 편집장 필립 캠벨(63) 박사는 “모든 연구자가 (네이처처럼) 영향력이 큰 저널에만 논문을 실으려 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젊은 연구자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창의적인 연구를 하라”고 충고했다. 8일 본지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다. 그는 KAIST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날 강성모 총장과 연구윤리·공대 혁신 등을 주제로 환담을 하고 학생들 앞에서 강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995년부터 20년간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요즘 세계 과학계의 흐름은.

 “최근 들어 유전자와 질병, 특히 암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다. 뇌과학의 발전도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연구자들이 외계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동안, 또는 죽기 전에라도 발견했으면 좋겠다(웃음).”

1869년 11월 4일 발행된 ‘네이처’ 창간호.

 -한국의 연구 수준을 평가한다면.

 “요즘은 국제협력연구가 많아서 한국의 성과만 따로 구별해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좋은 연구가 많아진 게 사실이다. 네이처와 자매지 투고가 늘었고 게재율도 올라가고 있다. 네이처의 평균 게재율이 투고된 논문의 7% 정도인데 한국은 이보다 조금 낮은 4%대다.”

 -네이처가 명성을 유지해온 비결은.

 “우리의 편집철학은 ‘과학적 자극(scientific stimulation)’이다. 창간 이래 이 철학을 변함없이 지켜왔다. 네이처는 편집위원회 없이 내부 전문가들이 편집을 결정한다. 심사위원들이 반대해도 편집자들의 뜻에 따라 논문이 출판된 경우도 있었다.”

 -미국 UC버클리대의 랜디 셰크먼 교수는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뒤 네이처 같은 유력 저널에 논문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중적 관심을 끌 만한 논문을 골라 싣는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논문 인용도나 언론에 주목받는 걸 의식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논문을 싣는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다. 게재 논문의 피인용도를 확인해 보면 2년 내 100번 이상 인용된 논문이 있는가 하면 2번밖에 안 된 논문도 있다. 하지만 2번밖에 인용 안 된 논문을 발굴한 게 더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너도나도 영향력이 큰 저널에만 논문을 실으려 하는 건 문제다. 이런 분위기는 과학계의 다양성을 해친다. 네이처는 그대로인데 과학계가 변했다.”

 강성모 총장은 캠벨 편집장에게 “한국에선 공학도들조차 네이처에 논문을 내려 한다. 모든 평가가 유력 저널에 논문을 몇 편 싣느냐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혁신하기 위한 논의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고 소개했다.

 -한국 연구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빨리 논문을 출판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내라고 권하고 싶다. 더 창의적이 돼라(Be more creative). 특히 젊은 연구자들은 시간적·공간적 여유를 가져야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영국 정부 등과 공동 연구를 했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는.

 “ 연구를 하려면 정부의 지원과 함께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지지가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든, 자신의 연구를 충실히 해 결과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든 과학자들도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캠벨 편집장은 지난 1월 네이처에 게재된 뒤 최근 조작논란에 휘말린(본지 3월 17일자 8면)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STAP세포 논문에 대해선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네이처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게 내부 방침”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문제 있는 연구들이 실리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에게 연구의 목적과 절차 등을 꼼꼼히 따져보도록 하는 가이드라인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캠벨 편집장은 영국 브리스틀대를 졸업하고 레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고층대기물리학을 전공했다. 네이처의 물리학 편집자로 출발, 영국 ‘피직스 월드(Physics World)’ 초대 편집장으로 갔다가 다시 네이처로 돌아와 편집장을 맡고 있다.

대전=김한별 기자

◆네이처=1869년 영국에서 창간됐다. 미국 ‘사이언스(Science)’와 함께 세계 과학저널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전 세계에 400만 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고, 월 평균 700만 명이 홈페이지를 찾는다. 영향력 지수(IF, 피인용도) 38.597로 다학제(多學際) 과학저널 가운데 세계 1위다(2012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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