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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디바리우스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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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7~18세기 이탈리아의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 일가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사진)은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십억원을 호가해도 세계적 연주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수백 년 묵은 명기(名器)는 정말 우수한 걸까. 프랑스 피에르&마리 퀴리 대학 연구진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이를 검증해 미국 국립과학협회보에 발표했다.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이들은 10명의 프로 연주자에게 5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포함한 고전 바이올린 6대, 최근 만들어진 바이올린 6대를 쥐여줬다. 위장을 위해 새 악기엔 오래된 목재 같은 촉감을 줬다. 연주자들은 눈을 가린 채 어두운 300석 규모의 콘서트홀과 리허설룸에서 연주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연주회에서 어떤 악기를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6명이 새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미국의 엘마 올리베리아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틀림없다”며 새 악기를 집었고, 평소 또 다른 명기로 꼽히는 과르네리델제수를 연주하는 캐나다의 수잰 후도 새 악기를 골랐다. 오래된 것과 새것을 올바르게 구분한 비율도 절반에 못 미쳤다.

 연구진은 2년 전에도 유사한 실험을 했다. 하지만 호텔방에서 이뤄진 실험은 조건이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들었다. 조건은 나아졌지만 이번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악기는 연주자가 길들이는 데 따라 다른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단기의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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