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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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네 신세 왜 이리도 기구한지 모르겠다. 나오느니 탄식이요, 흐르느니 눈물뿐이다.
그저 한 뼘도 안 되는 소나무 가지가 내 집이니 고대광실을 갖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게 왜 이다지도 살기 어려운지 알 수가 없다.
내 고향은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의 뒷산. 옛 산천을 그리던 조상의 유훈을 따라 20년만에 찾아 들었지만 꿈에 그리던 곳과는 딴판이다.
정들면 모두가 내 고장이라고 애써 정붙여 살려했지만 정붙일 겨를조차 주지 않는 야박한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내 목이 길어서 이처럼이나 박복한 것인가. 목이 유난히도 길었다는 이상도 김수영도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잘 살지도 못했고….
아마 목이 빠지게 햇볕 볼 날을 기다리다 지쳤기에 목이 길어졌는가 보다. 그렇다면 우리네 조상들도 모두 잘 살지는 못 했던 게 아닌가.
그래도 옛 어버이들 가운데는 보호자들이 적지 않았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고 경고를 아끼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아무도 우리를 돌봐주지를 않는다. 애들까지도 심심하면 몰려와서 돌팔매질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리고 당돌한 녀석들은 아예 나무 위에 기어 올라와 알들을 깨고…그 행패를 어찌 이루 다 말하겠는가.
나야 머리가 깨져도, 다리가 부러져도 그래도 모든게 천명이라 견딜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끔찍한 원수졌다고 내 새끼들, 아직 세상 햇볕도 보지 못한 불쌍한 것들까지 박해하느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애들에게 원한을 살만한 것은 티끌만큼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저 까마귀가 빛깔이 검다고 비웃던 옛 일이 생각날 뿐이다 그때의 까마귀 후손들이 오늘의 나도 지쳐 긴 목이 휘어졌다. 먼 김해 낙동강 하구에는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 있다는 말을 어설프게 들은 적은 있다.
내 휘청거리는 다리로는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쓰러질 것만 같다. 또 천신만고 끝에 가봤다가 쫓겨나면 큰 일이다.
바로 그 옆에 건설중인 공항의 소음이며 매연을 네 어린것들이 견딜 수 없을 게 틀림없다.
나오느니 탄식이로다. 하늘은 정녕 나를 버리셨읍니까? 그저 한 뼘의 내 집입니다. 이 소원마저 이뤄주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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