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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민석의 시시각각

안철수 벌써 흔드는 '배신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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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아프리카 투표용지엔 동물이 등장한다. 짐바브웨란 나라의 2013년 대통령후보 투표 용지를 인터넷에서 봤다. ‘symbol’ 난이 있었다. 맨 위에 들소 혹은 코뿔소처럼 생긴 동물이 보였다. 대신 기호 1, 2번이 없었다. 후보사진까지 넣었다. 높은 문맹률 때문이다.

 짐바브웨에서도 숫자는 불필요한데 새정치민주연합이 투표용지에서 사라질 ‘기호 2번’ 때문에 시끄럽다.

 ①서울 구청장 전멸론, 진짜 이유

 6월 4일 투표장에 간 서울의 ‘나도야(羅徒野)’씨. 야당 구청장을 찍으려는데 2번이 용지에 없다. 당황할 순 있겠다. 그렇다고 4년 전 찍었던 2번을 못 찾아낼까. 투표지가 운동장만 한 것도 아니고, 사지선다 찍기 교육만 몇 년인데. 짐바브웨의 문맹 유권자는 더욱 아닌데.

 그런데도 야당은 기호 2번을 못 받아 서울 구청장들(25명 중 17명) 다 죽게 생겼다고, 약속을 철회해서라도 2번을 새겨넣으라고 안철수 대표를 콩 볶듯 하고 있다.

 혹 피아 구분을 못해 번지수를 잘못 찾는 이도 있을 거다. 무소속이 난립할 경우다. 그래도 전멸할지 절반(이상)은 살아남을진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아직 한번도 안 해본 실험이다. 당사자들의 불안이야 이해하지만 옆에서 사생결단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별로 득표에 도움될 것 같지도 않은 의원이 대부분이다. 야당 사람에게 시끄러운 이유를 물어봤다.

 “이번에 구청장들이 낙선하면 다음 총선 때 국회의원 안 나오려 하겠어요?”

 ②무공천 때문에 광역이 위험?

 기초 때문에 광역시장, 도지사까지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2011년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단일화 경선을 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기호 2번’이 아니면 당 조직이 안 움직이고, 유권자들이 못 찾아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시장, 기호 10번을 달고 이겼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 2010년 한나라당 후보에게 여론조사상 25%포인트 정도 뒤진 채 기초 조직도 부실하게 출발했다. 강원도 시장·군수들은 거의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결과는? 이 전 지사의 9%포인트 차 승리였다.

 그해 경남에서 이긴 무소속 김두관 후보. 기호 2번을 달았나, 조직이 강했나. 기초 무공천을 하면 광역이 위험하다는 논리는 억지다. 바람은 광역에서 기초로 분다. 만약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건 기초 무공천 탓이 아니다. 명분을 무슨 규제 정도로 알고 폐기하려 덤비는, 지금의 막장 자해극 때문이다.

 ③무공천 철회하면… 이기나?

 그런대로 괜찮은 정치인과 아닌 사람을 가려주는 것. 이번 논란의 한 가지 유익함이다.

 묻고 싶다. 이제 와서 무공천을 철회하면 기초든 광역이든 이길 자신 있나.

 이렇게 답한 기초단체장이 있었다.

 “처음엔 욕을 얻어먹겠지. 나중엔 다 잊는다. 조금 대미지를 입더라도….”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의 반박이다.

 “불리해졌다고 약속을 뒤집으면 국민에게 쓰레기 취급 당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지금 야당만 답을 모른다. 안에서 결론이 안 나면 꼭 하는 패턴이 있다. 외부의 적, 박근혜 대통령을 찾아나선다. 공약을 안 지킨 건 맞으니 그 부분은 얼마든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째 지난해 국정원 댓글 사건 때와 닮아간다. 목소리 키워 사과를 외치면 박 대통령은 거부하고, 야당은 농성에 나서고, 박 대통령은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시간은 그렇게 가고, 얻은 건 하나도 없고. 또 한번 야당이 미끼를 꽉 물었다.

 지금 강경파들은 무공천을 철회하라고 안 대표를 쪼고 있다. 안 하면 선거 후 보자고 벼른다. 꽃가마 내주던 사람들인데 ‘배신의 계절’이 너무 빨리 왔다.

 강경파 요구대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게 같이 살자는 얘기인지, 혼자 죽으란 얘기인지.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 안철수는 (당내 강경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한번 무공천에서 철수(撤收)합니다.”

  같이 죽자는 얘기 같기도 하고….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