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이데거」-김준섭<서울대교수·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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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환으로 26일 서거한 「마르틴·하이데거」는 20세기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해석학·현상학을 방법론으로 이용, 『존재와 시간』으로 그의 실존철학이론을 굳힌 대철학가다.
지난 71년12월 독일「프라이부르크」자택에서 「하이데거」를 만났을 때 그는 당시 83세의 고령에도 불구, 연구에 정진하고 있었다.
내가 「하이데거」를 만나게된 동기는 「튀빙겐」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있을 때 동료교수이던 「오토·F·볼노」교수와의 인연 때문.
「볼노」교수 역시 「실존철학」의 전공자로 「하이데거」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의 하나였다. 「볼노」교수를 통해 면회를 신청하자 「하이데거」는 동양의 귀한 손님이라며 쾌히 승낙했다.
「하이데거」의 집은 「프라이부르크」의 교외로 조용한 2층집이었다.
부인과 둘이서만 살고있던 「하이데거」는 5척이 조금 넘는 작은 체구로 몸은 뚱뚱했으나 노환으로 약간 떨고 있었다.
「하이데거」를 방문 중 특히 그의 서재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강의「노트」를 정리, 고령에도 불구, 출판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4평 정도의 서재에는 한쪽 벽에 서가가 있고 조그마한 초상화가 있을 뿐 나머지는 정리할 원고로 가득 차있었다.
「불노」교수로부터 짧은 시간의 면회라는 약속 때문에 인사말 이외에는 관심 있는 철학의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당시 질문했던 내용은 ①「하이데거」가 말하는 신은 종교적 신인가 ②「하이데거」의 종교는 무엇인가 ③우주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④죽음에 관한 생각을 해본 일이 있는가 ⑤철학방법 ⑥최근의 저술활동 등이었다. 이중 특히 기억되는 것은 죽음에 관한 「하이데거」의 대답. 나는 죽음에 대한 노철학자의 심오한 설명을 기대했으나 『인간이란 죽음에 이르는 존재일 뿐 죽음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의 철학은 아직 죽음을 생각하도록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대답한 귀절이 감명 깊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손이 떨려 일체의 집필활동을 못하고 있었으나 1939년에 강의한 『「셰링」의 자유』에 관한 책이 곧 발간될 예정이었다.
「하이데거」가 국내학계에서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하이데거」자신은 「가톨릭」신자라고 분명히 말함으로써 그가 유신론자임을 안 것은 방문의 최대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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