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르겠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는 정치에 대해서 전연 아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나쁜 정치인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더듬을 만한 지식을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매우 소박한, 그리고 매우 원시적인 기대만은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정치를 잘해서 국민을 잘 살게 해달라고….
그러나 이런 어리석은 기대는 반드시 잘 이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신민당이 치른 전당대회를 보고 더욱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이번의 전당대회를 마치 왜놈들의 「사무라이」전쟁처럼 만들어놓아야 하는 이유를 얼른 깨달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몽둥이를 휘둘러야 하고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비싼 월급을 타먹으면서 그런 추한 꼴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신민당이 하는 일이 워낙 시시해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으니까 이런 「다이내믹」한 방식으로라도 국내외에 화제를 한번 뿌려보자는 속셈일까?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들을 당권경쟁을 위해서 이렇게 난장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가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협상을 하고 토론을 하고 투표를 해서 총재를 선출하면 될게 아니냔 말이다.
산산이 부서진 시민회관의 유리창, 몽둥이를 들고 살벌하게 버티고 있는 청년들, 쇠로 된 「바리케이드」, 스산하게 흩어져 있는 휴지들, 그리고 벌겋게 핏발이 선 눈알과 눈알들….
그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회장엔 해방 후 30년 동안의 정계를 주름잡아 오고 있는 기라성 같은 거물들이 관록과 그 끈기를 자랑하며 잔뜩 버티고 있었다.
이런 당대의 정객들이 그렇게나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애국심과 민주주의는 다 어디다 감추어두고 그런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양파가 다 자기가 하는 일은 모조리 애국적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신민당 삼국지시대」의 윤리란 바로 이런 것인가?
시민회관회의는 반대파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시작하여 겨우 40분만에 「옳소」와 「박수」와 「기립」과 「○○○에게 위임하기로」를 연발하면서 마치 초음속 여객기처럼 빨리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탑승객이나 구경꾼들도 그것이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지를 까맣게 모르면서….
이런 어수선하고 살벌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 「주류」들이 모여서 전당대회를 하고있는 신민당 당사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좁은 입구에서부터 회의장에 올라가도록까지 완장과 몽둥이를 든 청년들이 일촉즉발의 기세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스태미너」를 위해서 공급된 듯한 빵부스러기와 「사이다」병들이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가운데서…. 틀림없는 난리만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신의 영달만을 바라는 백전노장의 거물들이 군웅할거하면서 조금도 양보하려하지 않는 한 누가 신민당 지도자가 된다고 하여도 그 지도력은 강한 도전을 받게 마련일 것이다.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생산적인 「건전야당」의 자세가 심각하게 한번 재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