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현 벼랑끝 LG 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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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서 중요한 것은 신장이 아니라 심장의 크기"라고 포효한 앨런 아이버슨의 말에 동의한다면 "중요한 것은 연고지나 체육관의 규모가 아니라 팬들이 지닌 심장의 크기"라는 원주 농구팬들의 외침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유흥가가 밀집한 단계지구의 '어깨'들도, 구시가지 재래시장의 보세상점 여주인도 27일 오후 7시에 TG가 LG와 싸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두들 "꼭 가보겠다. 안되면 중계라도 본다"고 별렀다.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 TG가 '파랑새'라는 이름으로 원주시민의 가슴에 지핀 불씨가 이제 들불처럼 번졌다. 원주는 뜨거웠고 TG는 그 심장에 불을 질렀다. 정작 타오르지 못한 것은 선수들 자신의 심장이었다.

2연패를 당해 궁지에 몰렸던 LG는 27일 치악체육관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4강전(5전3선승제) 세번째 경기에서 원정의 불리를 딛고 TG에 79-70으로 승리, 1승2패로 따라붙었다. 강동희(13득점)와 김영만(15득점)이 제몫을 했고 포스트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LG는 필사적이었다. 변칙 용병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김태환 감독은 베스트5로 정면 돌파에 나섰다. 첫 쿼터 7분쯤 17-9로 치고나갈 때 가능성이 보였다. 2차전까지 TG의 높이에 눌렸던 테런스 블랙(19득점).라이언 페리맨이 연속 덩크를 퍼부으며 용기를 냈다.

믿었던 방공망이 뚫리자 TG가 통째로 흔들렸다. LG 블랙이 3쿼터에 골밑에서만 12점을 빼냈다. LG는 57-50으로 앞선 3쿼터 7분30초부터 블랙의 골밑슛과 김영만.조우현의 3점포를 집중시켜 3쿼터 종료 30초 전 67-51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TG선수들은 자꾸만 서둘렀고 그럴수록 정확성은 떨어졌다. 결국 TG는 허재(12득점)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김주성(15득점)의 골밑 득점으로 59-68로 스코어를 좁힌 4쿼터 7분, 허재의 3점포가 터졌다. 허재에게 수비가 몰리자 양경민이 두 개의 3점슛, 리온 데릭스가 덩크를 퍼부었다.

경기 종료 1분 전엔 70-72까지 따라붙였다. 여기서 김감독이 수비 전문으로 기용한 박규현의 3점포가 터졌고 시간은 50초가 남았다. TG의 심장은 너무 늦게 불타오른 것이다. 4차전은 29일 원주에서 벌어진다.

원주=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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