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3년만에 귀국한-작가 최인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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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나 자신을 「소설 노동자」로 생각해 왔습니다. 노동자가 일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서의 3년은 더 큰 노동을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셈이지요.』
73년 9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열린 「인터내셔널·라이터즈·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도미, 3년 동안 한국 문단과 연을 끊었던 중견작가 최인훈씨가 지난 12일 소문 없이 귀국했다. 그 동안 문단 주변에서는 『최씨가 영영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았었다.
그러나 최씨는 미국에서의 생활은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정리하는데 다소의 뜻이 있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강조한다.
『작품은 한편도 쓰지 않았지만 정신은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본래 과작이니까 썼다고 해도 단편 수삼편에 불과할 텐데 그것이 무슨 특별한 뜻이 있겠습니까.』
최씨는 그러나 2백장짜리 희곡(제목은 미정)을 완성했으며 앞으로 쓸 작품의 구상도 꽤 해 놓은 듯한 눈치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라는 작품으로 희곡작가로서의 깊이도 보였던 최씨는 『비록 미국에서 쓴 희곡이 미국 생활의 결산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희극에 대한 관심의 결정』이라고 자신을 보인다.
『우리나라 전래의 민화를 극화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전설 가운데는 예수의 일대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허다하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원형으로 따지면 기독교와 같은 발상이지요. 탄생·짧은 생활·승천을 묘사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탈고는 오래 전에 했지만 깎고 다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이 작품을 쓰면서 심한 정신적 이질감을 느꼈다는 최씨는 설혹 제나라를 떠난 정신적 혹은 실질적 체험이 작품에 반영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작가의 뿌리까지를 바꿔 놓지는 못하는 것이라 했다.
『특히 내 작품 세계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토속적인 것보다는 넓게 열린 사고의 공간이 아닙니까. 가령 여기 앉아서 미국의 생활을 생각했다 해도 직접 겪은 미국 생활에 덜 미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국을 소재로 하여 소설을 쓰겠다는 1차적인 의미를 떠나서라도 『자기 나라를 알려면 외국을 알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서 외국 생활은 다소의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고 최씨는 술회한다.
『항상 전신을 누르고 있던 긴장감에서 벗어나니까 후련하긴 한데 앞으로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생각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또 새로운 긴장감이 생기는군요.』그러면서도 최씨는 밝게 웃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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