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무역 대결장 「밀라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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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혈 「데모」 사태가 나고 내각이 흔들리고 또 국제수지 파탄으로 「리라」화가 폭락해도 「이탈리아」사람들은 여전히 점심을 3시간씩 먹고 하오 7시만 되면 모든 상점은 「셔터」를 내린다. 무수한 전쟁과 정변 또 천재에도 불구하고 「로마」시가 2천7백년을 면면히 번성해 왔듯이 「이탈리아」도 겉에 이는 작은 풍랑만으론 대세엔 조금도 영향 없다는 배짱들이다.
마치 「이탈리아」가 곧 공산화될 것 같이 야단이지만 『「이탈리아」는 결코 공산국가가 될 수 없는 나라다』고 「로마」주재 조상호 대사는 자신 있게 단언한다. 「이탈리아」가 딛고선 문화적 전통이나 정치적 유산, 또 「이탈리아」인의 낙천적 기질이 하루아침에 근본적 전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로마」제국 때 쌓은 성벽이 오랜 풍로에 낡았지만 아직도 「로마」시내에 건재하듯이 「이탈리아」도 계속 「이탈리아」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943년 「뭇솔리니」 몰락 이후 40여 회나 내각이 바뀐 「이탈리아」에선 최근의 정변도 심하게 말하면 「찻잔 속의 폭풍」에 비유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오히려 조 대사는 「이탈리아」의 대 섬유 「코터」와 5천3백만「달러」의 금년 수출 목표 달성 여부에 더 관심이 크다.
수출 제일주의는 해외 공관에서 더욱 실감된다.
대사들은 「모닝·코트」를 입은 「세일즈맨」으로서 전시회에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수출상들도 자주 만난다. 본국에서 수출 목표가 내려오면 그것은 지상 명령이다. 조 대사도 「밀라노」에 한 달에 한번씩은 행차한다. 「이탈리아」수출의 전초 기지가 「밀라노」이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대성당이 있는 사도지만 「이탈리아」 상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밀라노」에선 남북한이 소리 없이 부닥치는 곳이다. 한국은 「밀라노」를 통해 「이탈리아」는 물론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대 공산권 무역을 개척하고 있고 북괴는 필요한 화학섬유·기계제품을 사들인다. 한국이 「이탈리아」에 수출하는 것을 북괴는 많이 수입해 간다.
화학 섬유사·직물 등이다. 「이탈리아」와의 무역고에서 보면 남북한의 차이는 꼭 10대1이다.
74년 북괴의 대 이 수입은 32억8천만「리라」(당시 환율 6백「리라」=1「달러」), 수출이 27억4천4백만「리라」로서 한국의 10%정도다. 74년 중 북괴의 대 이 주력 수출품은 쌀. 74년에 약4만9천t을 수출했다.
「밀라노」 교역의 남북 대결에선 한국이 일방적인 우세를 누리고 있지만 중공과의 생사 대결에선 무참한 「녹아웃」 상태다.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한국 생사의 좋은 시장이었으나 74년 중공이 물량 공세를 시작하고부터는 완전히 시장을 잃었다. 「이탈리아」는 1년에 약1천t의 생사를 수입하는데 이중 중공 산이 95%다. 중공과는 가격면에서 경쟁이 안 된다.
한국산은 ㎏당 최소한 29「달러」는 받아야 하나 중공산은 20∼21「달러」선에 들어온다.
한국은 68년부터「밀라노」시장에 진출, 74년 하반기부터 중공 산에 완전 축출 당하기까지 그런대로 재미를 보았으나 앞으로 당분간은 발붙이기가 힘들게 되었다. 「밀라노」에 진출해 있는 「한국 생사」지사도 이젠 생사 장사는 손을 떼고 신발 수출만 다소 취급하고 있는데 곧 철수할 움직임이다. 대일 섬유 협상 이후 한국은 생사 시장의 다변화를 부쩍 외치고 있지만 워낙 값싼 중공 산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 형편에서 한국 산의 진출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생사로 가공한 견직물 등도 기술이나 「코스트」면에서 지금은 경쟁이 안 된다.
「한국 생사」측에선 「이탈리아」 유명「메이커」들과 손을 잡고 「이탈리아」기술과 상표를 들여다가 한국서 제조, 수출하는 방법도 교섭하고 있으나 「이탈리아」측에서 쉽게 응하지 않는다 한다.
대 동구권 교역에 한국은 무척 노력을 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등은 한국산이라 해서 별로 꺼리지는 않으나 소련·중공 등은 한국 산이란 것을 알면 상담이 안 된다 한다. 「유고슬라비아」는 비록 공산권이지만 경제적으론 서방에 가까우며 「밀라노」에서 시청되는 「유고」TV방송에선 「이탈리아」 상품 광고 CM까지 나오고 있다.
대 이 및 동구권 수출의 증대를 위해선 「제노아」항에 약 1백만「달러」운영자금 규모의 보세 창고를 만들어 현지 판매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란 제언을 조 대사는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수입 대전 결제를 통관 당시의 환율로 하는데 한국은 선적 기간이 보통 40∼60일 이어서 「리라」시세가 크게 변하고 따라서 「이탈리아」수입상들도 「코스트」계산이 어려워 수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밀라노(이탈리아)=최우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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