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규 기자 종군기] "총든 이라크인 무조건 사살"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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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중부의 알 사마와 북서쪽에 있는 미군 보급기지 캠프 피터빌에는 26일 오전(현지시간) 긴장이 감돌았다.

2백km 떨어진 바그다드에 있던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수비대가 반격을 위해 대거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1백km 떨어진 나자프를 향해 진격하던 미군 3사단 선봉부대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과 40km 떨어진 곳이다.

미군 아파치 헬기부대는 나자프 북쪽 70km에 있는 카르발라의 이라크군을 대대적으로 공격했으나 반격이 만만치 않다는 소식이다. 당초 예상했던 바그다드 대회전 대신에 바로 이 주변에서 곧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날 캠프 피터벨은 탄약과 연료 등 보급물자를 전선으로 실어나르는 수송트럭과 이들을 호위하는 장갑차의 엔진 소리로 하루 종일 소란스러웠다. 병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군 측의 종군기자에 대한 통제도 시작됐다. 5군단 지원단의 존 맥길리스 6대대장이 기자를 불러 "기지 이곳저곳을 너무 돌아다녀 위험한 인물"이라며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자를 차에 태워 거기서 1백30km 떨어진 나시리야의 서쪽 외곽에 있는 한 비행장으로 보냈다. 며칠 전 미군이 격전 끝에 점령해 '부시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다.

이동하는 길에 엄청난 규모의 미군 이동을 목격했다. 먼지투성이의 좁은 2차로 도로에 5군단 3보병사단 소속 탱크.장갑차.패트리엇 미사일.다연장 로켓.수송트럭 등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1백30km를 이동하면서 이라크인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군은 이라크 남부에서 유프라테스강 서안을 따라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도로와 그 서쪽 너머의 황량한 사막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이 거주하는 유프라테스강 동쪽 지역은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동도 마음놓고 할 수 없었다. 캠프 피터빌에서 이날 오후 1시쯤 '부시 국제공항'으로 함께 출발한 미군 하사관은 "네 시간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두 배가 걸렸다.

이동하는 도중에 일곱번이나 비상이 걸려 자동차에서 내려 대피했다가 주변을 확인한 뒤 다시 출발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캠프 피터빌을 떠나기 전 장교가 수송대원들에게 "이동 중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멈추고, 이라크인이 총을 들고 있으면 무조건 사격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들었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보급로가 불안한 줄은 몰랐다.

'부시 국제공항'에 도착해 보니 "5군단 지원단 181대대의 한 여군이 수송 중 이라크 저격수의 총에 맞아 후송됐다" "이라크군이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원들을 잡아갔다"는 등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고 있었다.

송고용 위성전화로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병사들이 기자에게 진위 확인을 부탁했다. 그들은 정작 등잔 밑의 소식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 인근 '부시 국제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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