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1년 한국 속의 월남인|2백44가구 6백21명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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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망향 1년….월남이 공산군의 손에 넘어가 함락된「사이공」을 탈출한지도 30일로 한 돌을 맞는다. 실향민들은 그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며 이국 땅에서 새 삶의 터전을 다지고 있다.
한국을 찾았던 5백86가구1천5백62명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중 3백42가구 9백41명은 미국·「캐나다」·서독 등9개국에 연고를 찾아 떠났고 남은 2백44가구 6백21명은 한국에 정착했다.
우리나라에 눌러앉은 사람 중에는 순수월남인가족이 25가구 75명이고 나머지는 월남에 살다 돌아온 동포와 이들과 혈연을 맺은 월남인 처·자녀들.
25가구가운데 9가구는 서울에서,5가구17명은 부산, 나머지27명은 경기·충남·전남·경남 북 등에 흩어져 살고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지급한 가구 당 1백50만원(독신은 50만원)으로 집을 마련했거나 셋방을 얻어 정착했다.
일자리는 KAL·성창기업·복전사 등 정부가 알선해준 직장에서 매표사원이나 봉재공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인 처·자녀는 미국 등 제3국에 진출한 한국인 남편이 송금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와 음식, 그리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고조를 겪기도 했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한국인에게 적응하며 굳세게 살고있다고 했다.
「비엔·레·티」여사(47·부산시동래구남산동남산「아파트」)는 『처음 부산 임시수용소를 떠났을 땐 살아갈 길이 막막했으나 한국정부가 3자녀에게 일자리를 구해주어 이제는 저녁이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웃음꽃이 피고 희망에 차있다』고 했다. 「티」여사는 「사이공」함락 3일전 한국LST에 4자녀를 데리고 탑승한 것이 한국에 온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장남「레·광·티에」씨(23)와 장녀「레·티·리」양(25)은 경남섬유공업희사의 염색 과와 편물 과에서, 2녀「레·티·레」양(20)은 태광산업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월급은 4만∼4만5천 원.3자녀의 수입을 합치면 12만원이 넘어 그런 대로 중류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타에」씨는 『「사이공」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3학년까지 다녔었다』다면서『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학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티에」씨의 직장간부들은 『생각 치 않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티」여사는 『처음 김치가 너무 매워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익숙해졌다』면서 순수 담근 김치를 먹어보기도 했다·
이들 가족이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직장이 파한 후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 2녀「레」양이 「기타」를 퉁기면 가족합창이 시작된다. 월남노래를 부르다보면 가끔 고향생각에 젖어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국가요를 익히고 있다는 막내「레·완·비」군(l3)의 말.
가족들은 일요일이면 바닷가나 들놀이를 나가며 가끔 영화감상도 한다고.
가족들의 통역은 막내「비」군이 맡고있다.「비」군은 한국말을 더 익혀 내년에는 중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말했다.「티」여사는 『자녀들의 결혼상대는 한국인을 택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으냐』면서 『최근에 AFKN방송을 동해 공산「크메르」의 참상을 들은 후로는 월남에 남아있는 아버지와 친지들이 염려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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