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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사의 대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계박람회(엑스포 70)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바둑을 둔 일이 있었다. 결과는 인간이 불계승. 그 무한대의 묘수를 「컴퓨터」는 당해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사고은행」의 구실을 하는 「컴퓨터」일지라도 인간의 두뇌가 비장하고 있는 수를 앞지르지는 못한 셈이다.
기사들은 대국에 나가면서 무엇보다도 「컨디션」을 중요시한다. 두뇌의 기능을 어느 한구석 빈데 없이 속속들이 온통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국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관전자 들까지도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바둑을 일명 난가라고도 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도 바로 이 「난가」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진나라 때 왕질이라는 나무꾼이 있었다. 하루는 신안의 석실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가 동자들이 바둑두는 것을 보았다.
그 바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도끼자루가 썩었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느새 친구들이 모두 늙어 있더라는 『술이기』의 고사. 중국인의 호장한 일화이지만 바둑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다. 「수담」「좌은」「조노」「교중지락」…등도 모두 바둑의 별명들이다. 자못 선비들의 시경을 이룬다.
바둑의 기원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인도에서 비롯돼 중국을 거쳐 퍼졌다는 설, 다른 하나는 약 3천년 전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설. 중국의 『박물지』나 『태평어록』등에서는 요·순 시대(BC2350∼2250)로 추정하는 기록도 보인다.
바둑판이 가로·세로 17줄 3백 61점으로 구별된 것은 당 시대(1200년 전) 이후라고 한다. 그이전 한·위 시대에는 17줄 289점이었다.
우리 나라에 이 바둑이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중국의 고서에 나온다. 백제는 그 무렵 문화교류가 있었던 일본에 바둑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바둑의 용어들을 보면 다분히 역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둥근 돌(기석)은「천」을, 판(반면)은 주천의 일수를, 4분된 90줄은 4계를, 중앙의 별은 천원을, 흑백은 음양을 나타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바둑은 도를 존중한다. 승부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이기고 지는가를 사람들은 조용히 음미해 본다. 그 때문에 바둑에는 명보라는 것이 있다. 승패보다도 그것까지의 경과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오늘 본사가 주최하는 「아시아」의 정상급 바둑대결도 역시 애기가들은 그런 명보를 기대하는 것이다. 모두 20대의 천재적인 기사들인 점에서 그 기대는 과히 빗나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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