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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유로존 디플레 우려 … 돈 더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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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로존은 오랜 기간 낮은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야 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강연에서 ECB를 압박하고 나섰다.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바로 20여 시간 후면 열리는 ECB 금융통화정책회의를 겨냥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하지만 회복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강도 역시 미약하다”며 “유럽 경제에서 저(低)물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수요와 생산이 줄고 이것이 성장과 고용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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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가르드 총재는 이미 수차례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장기간 경기 침체와 낮은 물가가 지속되는 현상) 위험을 경고했다. ECB의 무딘 반응 탓인지 그는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ECB는 기존에 썼던 조치에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더해야 한다”고 방향까지 제시했다. 기준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돈을 푸는) 조치를 하란 의미다.

 올 3월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견줘 0.5%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8월부터 계속 하락해 2009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다. ECB가 목표로 하는 물가 상승률 2%에 한참 못 미친다. 물가는 사람의 혈압과 같다. 지나치게 높아도 문제지만 낮으면 더 큰일이다.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20년’에 몰아넣은 것도 디플레이션이었다.

 일자리 사정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가 집계한 올 2월 실업률은 11.9%였다. 지난해보다 겨우 0.1%포인트 낮아졌을 뿐이다. 청년 실업은 더 심각하다. 라가르드 총재가 저혈압(디플레이션) 위험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행동이 아닌 말로 라가르드 총재의 경고에 답했다. 3일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로 유지했다. 5개월째 동결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금 물가가 낮긴 하지만 회복 흐름을 타고 있다”고 금리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경우 금리 인하와 통화완화 조치를 검토할 수 있고 이에 대해 회의에서 토론하기도 했다”고 여지를 뒀다.

 ECB가 복잡하게 신호를 보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가나 실업 같은 실물 경기만 본다면 유로존은 아직 냉탕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경제위기는 끝났다’는 신호가 뚜렷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라가르드 총재가 저성장을 예고했지만 그날 투자자들은 오히려 주식시장에 돈을 밀어 넣었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독일·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증시는 꾸준히 상승 흐름을 탔다. 2008년 금융위기 전 수준을 회복한 지 오래다. 독일 증시(DAX30 지수)는 올 들어 여러 차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경제 성장률이나 제조업 지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로이터통신은 “기준금리 동결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며 “이제 시장의 관심은 ECB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양적완화 버튼을 누를지 말지로 옮아갔다”고 설명했다.

조현숙 기자

◆유로존(Eurozone)=통화로 유로(Euro·기호는 ‘€’)를 쓰는 나라를 뜻하는 말. 1991년 1월 유럽연합(EU) 단일통화 유로가 첫선을 보이며 생긴 경제권역이다. EU 28개국 가운데 프랑스·독일·그리스·슬로바키아·아일랜드·이탈리아 등 18개국이 유로를 쓴다. 보통 이들 나라를 묶어 유로존이라고 부른다. 영국·덴마크·스웨덴 등 나머지 10개 나라는 EU 회원국이면서도 유로를 쓰지 않고 자기 나라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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