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동구권 경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철의 장막으로 불리던 동구 공산국들은 지금 알게 모르게 서구 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깊숙이 침투되어 새로운 소비욕구와 더 큰 기대감과 함께 사회변화의 태동을 겪고있다.
4반세기 동안을 미래에 대한 약속아래 절약과 단조로움을 강요받으며 배급을 받기 위해 긴 행렬, 누더기 옷, 그리고 음산한 거리의 고요 속에서 지내온 동구 공산국 국민들은 생활주변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끔 됐다.
지난 23년간 정치적·경제적 탄압에 항의해서 5차례의 대규모 반정부 민란-56년 「헝가리」와 68년 「체코」사태 외에 53년의 동부「베를린」의 생활고 폭동, 56년의 「폴란드」에서의 『빵과 자유를 위한』폭동, 70년의 「폴란드」에서의 시위「데모」등이 있었던 터라 동구 공산국 정부는 소비경제의 향상에 대한 압력을 계속 받아왔었다.
그래서 동구 공산국들은 종주국인 소련의 눈치를 살피면서 서방에 대한 창구를 열어놓고 부지런히 사들이고 빌어왔다.
그 결과 지난 5년 동안 취약하지만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여행자들의 눈에도 동구 공산국들의 수지문제가 눈에 띄게끔 개선됐다.
모든 주요도시들은 서구도시들처럼 「피조트」 「포드」 「머시드」는 물론 「폴란드」 또는 소련제의 「피아트」,「체코」제의 「스코다」,「루마니아」제의 「리놀트」동독제의「발트부르그스」등 각종 자동차로 교통혼잡을 빚고있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유행에 따라「부츠」를 신고 「코카·콜라」와 「켄트」담배가 나돌며 곳곳에 서구식 「호텔」이 들어서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의 과실을 공유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들 동구 공산국들은 막대한 외채를 짊어지게 됐다.
소련과 동구 6개국, 즉 동독·「풀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는 모두 약 3백 20억「달러」의 외채를 짊어졌으며 이중 90억「달러」는 작년 한해동안 발생했다.
외채가 너무 급속도로 증가하자 동구 공산국들은 서방의 상품을 사들이는 새로운 방법으로 급기야 자본주의 기업을 유치하여 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와있다.
예컨대 「헝가리」의 경우 이미 서방의 기업체들과 1천여 협력협정을 맺어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중 한 예로 「스위스」의 한 회사는 지난 74년 「헝가리」의 국영 「타이프라이터」 공장건설에 합작투자, 그 제품을 「스위스」를 통해 세계시장으로 내다 팔고있다.
미국의 「카티·유니버셜」이란 회사도 79년까지 연간 2백만 켤레의 구두를 생산하는 「헝가리」의 신발공장에 기술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코닝·글라스·워크」사는 혈액·「개스」분석기를 생산하는 「헝가리」회사 주식의 49%를 소유하고 있다. 「폴란드」도 지난주 서방에 나가 사는 「폴란드」계 사람들에 한해 국내투자를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코메콘」(공산권 경제회의) 회원국 중에서 특히 「폴란드」는 대 서방경제관계가 가장 심화돼 지난 71년 29%이던 대 서방무역의존도가 75년엔 50%로 확대됐고 대외부채는 80억「달러」에 달한다. 「코메콘」회원국 중 소련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가장 높은 「불가리아」조차 「이탈리아」의 국영석유회사를 불러다 흑해의 석유탐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68년 소련군대의 발굽에 밟힌 「체코」는 무역액 중 대 서방거래 액이 27%선이며 최근 외국회사가 국내에 사무실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공포했다.
이렇듯 서구경제와의 관련도가 깊어지게 됨으로써 동구의 경제는 서구의 다른 나라처럼 불황의 여파를 톡톡히 맛보게 됐고 외국 수입품 가격의 상승에 주도돼 「인플레」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련을 비롯, 동구 공산국들의 작년도 무역적자는 1백 20억「달러」로 불어났고 이 「갭」은 대부분 서방으로부터의 차관으로 메워야했다.
「코메콘」 6개국에 대해선 원유와 기타 원자재를 공급하고있는 소련의 가격인상조치가 위협적인 부담이 되고있다.
소련은 원유 값을 15개월 전에 1백 31%를 올려 「배럴」당 7「달러」를 받아 동구 공산국들에 30억「달러」의 추가부담을 안겼고 다시 금년 초에 8%를 인상한바 있는데 78년까지 원유공급가격을 중동 산유국 수준에 맞춘다는 계획이고 보면 동구제국으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구제국은 주택난, 생산성의 저하, 경영의 후진성 등 안고있는 문제점은 아직도 허다하다.
생산성 문제만 하더라도 「폴란드」에 있는 「피아트」자동차 공장의 한 노동자는 「이탈리아」의 「피아트」공장에 있는 노동자에 비해 15%가량 뒤떨어지고 있다.
동구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누구나 볼 수 있듯이 동구사람들은 「카페」같은데서 만나면 정치적인 얘기는 일체 못하고 자동차·TV·냉장고의 성능과 가격 등 온통 경제문제에 대한 화제로 꽂을 피운다.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공산권문제 수석보좌관인 「헬무트·소넨펠트」가 소련이 동구권으로부터의 충성심을 확보하지 못하면 역사적으로 불행하다고 공언한바 있지만 이러한 초강대국의 분할에 의한 세계질서의 유지구상에도 불구하고 동구 공산사회에 대한 소련의 통제권 확보 유지는 힘들어졌다.
서구경제의 즐거움을 맛본 동구사람들은 다시 과거로 되들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