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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1화> 암 환자 벌떡 일어나게 된 계기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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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를 하기 전 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다. 사돈에게 ‘후지게’ 보이면 안 된다며 넥타이만 3가지를 여러 차례 해보고 또 거울을 봤다. [이현택 기자]

당신은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연재를 하기 전 페이스북을 통해 설문조사를 했다. 몇 명에게는 의견을 물었다. “결혼을 못해서 불효자(박OO, 여, 27)” “부모님께 효도를 못해서(오OO, 남, 26)” 등의 답이 돌아왔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불효자다. 어버이날을 맞아 2011년 5월 8일 중앙SUNDAY에 쓴 On Sunday 칼럼 ‘불효자의 어버이날’에는 이렇게 적었다.

“정신을 차리기 싫어서 안 차린 게 아니다. 앞서 쏟아낸 신세 한탄은 요즘 30대라면 한 시간 이상씩 랩처럼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이다. 이럴 때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친구 서넛이 모여 한두 잔씩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들어간다. 만취해서 집에 들어가면 영락없는 ‘정신 못 차린 주정뱅이 아들’이 되고 만다. 여기에 아이돌 여가수 노래나 흥얼대면 아주 제대로 밉상이다.”

그렇다. 밉상 불효자였다. 매일같이 일을 핑계로 술자리와 늦은 귀가를 일삼는 아들이었다. 불효자들에게는 공통적인 ‘레퍼토리’가 있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가세가 기울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아버지는 암이었다. 그것도 치료가 어렵다는 식도암. 전이가 되어 3기가 됐다.

그 날 이후 딱 3년. 아버지는 비교적 암 투병을 잘 버티고 있다. 2주마다 진행되는 항암치료는 떨어져 사는 나와 아버지가 만나는 시간이다. 회사 근처에 병원이 있어, 점심시간에 밥 한 끼하러 간다. 병원밥은 맛이 없다고 투정을 하셔서, 이것저것 사갖고 간다. “돈 들게 뭘 사오냐”는 말과 동시에 폭풍흡입하시는 모습이 정겹다.

오늘부터 연재하는 ‘불효일기’는 쿨한 이별을 위한 준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일에 바쁘고,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아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퍼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중에 슬퍼하고, 정중히 기억하기보다는, 살아 계실 때 밥 한 번 더 먹고, 아버지에게 응석(사실은 주정에 가깝다)을 부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불효의 시작은 장가요, 불효의 끝도 장가다. ‘ㅋㅋㅋ’을 쓰고 싶은데 점잖은 온라인 중앙일보에서 쓸 수가 없다. 내 결혼식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지난 3월 22일. 나는 결혼을 했다. 꽤 오래 사귄 회사 사람이다. 어떤 선배는 “가장 게으른 놈이 사내 결혼, 그 다음 게으른 놈이 업계 사람과 결혼”이라는 말도 하셨는데, 꼭 그런건 아니었다.

결혼은 예정돼 있던 것이었지만, 날짜는 급박했다. 10월 쯤 할까 생각하던차에, 7개월을 당겼으니. 1월 초 결혼 결심을 하고 식을 올리는데 45일이 걸렸다. 계기는 아버지였다. 생전에 사이가 좋았던 고모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다. 암환자 아버지의 전매특허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가를 가도록 해라”가 나왔다. 결혼 생각도 있던 차라, 저 레퍼토리를 그대로 여자친구에게 써먹고는 결혼에 골인했다.

새 식구가 생기니 아버지도 좋은 모양이었다. 며느리 앞에서 ‘스타일’ 구기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한 번은 항암치료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였다. 2월 중순이었다.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한 마디에 엄살은 사라진다. 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뭔가 한 마디씩 격언이나 훈계를 하고 싶으신지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 부쩍 늘어 보였다.

결혼식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았다. 사실 3일 전부터 컨디션 관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30분 이상 서 있는 것은 무리인데, 이날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한다며 2시간을 돌아다닐 정도였다. 대개 이 정도 무리를 하면 1주일 정도 피곤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이후에도 결혼식을 찾은 지인들에게 감사 전화까지 할 정도였다.

주례를 맡아주신 신부님(허락을 받지 않아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도 아버지의 상태에 다소 놀라신 모습이었다. 불과 3개월 전 아버지의 바싹 마른 모습을 보고는 손을 잡고 기도해 주셨던 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첫 회에 구구절절 결혼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버지는 이날 입을 양복에 맞는 넥타이와 양복 등을 몇 차례나 입어보는 ‘리허설’을 하셨다는 점이다. 집에서 혼자 말이다. 결혼 2시간 전 텅빈 성당에 일찌감치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불효 탈피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ps. 놀라운 사실이 있다. 사실이라기보다는 소소한 발견일 수도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당신은 불효자입니까?’라고 지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니오’가 57%나 나왔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우리가 그렇게들 효자 효녀였나? 아니면 익명성을 이용한 하나의 거짓말인 것인가.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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