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할 때가 그리웠죠, 훈련 너무 힘들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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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티셔츠에 후드티. 박혜진의 패션은 전형적인 여자 운동 선수 스타일이다. 그는 “여자 운동 선수 중에서도 왈가닥인 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강정현 기자]

2013~2014 시즌 여자 프로농구 최우수선수(MVP) 박혜진(24·우리은행)의 고향은 부산이다. 지난달 29일 신한은행을 따돌리고 우승의 감격을 누린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숙소에서 짐을 꾸렸다. 시즌이 끝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다. 집에서 나온 건 지난해 4월이다. 약 1년 만의 귀가다. 꽃 필 때 떠나온 집을, 꽃 필 때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박혜진이 얼마나 치열하게 1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지난달 31일 박혜진을 만났다. “시즌 중에 이틀 휴가를 얻었지만 병이 나서 집에 못 갔어요. 인터뷰 마치면 곧바로 서울역으로 갑니다”며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박혜진은 “집에 돌아가면 편하게 눕고 싶어요”라고 했다. 눕는 건 숙소에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숙소에서 눕는 거랑 엄마가 있는 집에서 눕는 건 다르죠. 엄마가 해준 불고기를 먹고 싶어요”라고 했다.

 우리은행은 4년간 최하위에 머물다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하는 통합챔피언이 됐다. 드라마틱한 변화의 비결은 훈련이다. 위성우(43) 감독이 부임한 2년 전부터 훈련이 독해졌다.

 “리그 일정표가 나오면 저희는 경기와 경기 사이 간격이 긴 때를 찾아요. 경기가 없다고 쉬는 게 아니라 훈련이 더 혹독해지기 때문에 미리 각오를 하는 거죠.” 훈련 집중도도 높다. “예전에는 오후 3시에 시작하면 저녁 시간에 맞춰 오후 6시쯤 끝났어요. 그런데 위 감독님은 스스로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훈련을 마쳐요. 6시30분에 끝날 때도 있지만 8시까지 훈련이 계속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훈련 때 시계도 안 봐요. 시간을 확인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저녁 훈련이 고무줄처럼 늘어져 숙소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위 감독에게 항의를 한 일도 있었다.

 강훈련에 팀 분위기도 바뀌었다. “너무 힘들어서 동료와 ‘꼴찌 하던 때가 그립다’는 농담도 해요. 그때는 1승만 해도 우승한 것처럼 기뻤거든요. 지금은 이겨도 혼날 때가 많아요. 또 예전에는 져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분하고 약 올라서 참지를 못하는 분위기가 됐어요. ‘이렇게 훈련하고도 지면 정말 억울하지 않냐’는 거죠.”

 박혜진은 어느새 국내에서 가장 슈팅이 정확한 선수가 됐다. 3점슛을 209개 성공시키며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자유투는 45개를 연속 성공해 여자 프로농구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자유투를 할 때 저는 꼭 네 번 공을 튀긴 후 공을 들고 림을 봐요. 그리고 슛을 쏘는 거죠. 특별한 생각은 하지 않아요. 연속 성공이 화제가 되면서 좀 더 신중하게 던졌어요”라고 말했다. 94%로 자유투 성공률도 1위다. 자유투나 3점슛을 잘하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 지루하게 반복된 훈련의 성과다. 그는 “예전에는 하루에 슈팅을 400개 정도 했다면 지금은 800개에서 1000개는 합니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여자농구는 굵직한 국제 대회 2개를 치른다. 세계여자농구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이다.

박혜진은 “예전에는 MVP가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대표팀에서 변연하(34·KB) 선배와 함께 플레이를 했는데 정말 잘하데요”라며 “이번 대표팀에서는 좀 더 영향력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소박하면서도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상형을 묻자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탤런트 김수현을 꼽았다. 하지만 아직 남자친구는 없다. “감독님 탓이에요. 훈련이 힘들어서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 쉬기에 바쁘죠.” 남자친구가 없는 핑계거리도 애꿎은 감독에게 돌리지만 팀에 대한 자부심은 드높다. “우리 팀은 선수 한 명 한 명보다 5명이 뭉치면 더 강해집니다. 내년에도 또 우승할 거예요.”

글=이해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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