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민족주의」|「유럽합중국」실현은 아직도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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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을 하나로 합친다. 「유럽」의회를 강화한다 한대서 서구가 당장 한 덩어리로 뭉쳐지리라 여긴다면 그건 아무래도 성급한 얘기다.
「프랑스」사람들이 최근 영어단어들을 「프랑스」말에서 쓸어내자고 한 것은 위대한 이 민족의 콧대로 봐선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옆에 붙은 「벨기에」에서도 그 나라 국어인 불어의 순수성을 지키자고 소위 「플랑그레」(불어화한 영어단어)의 사용금지법안이라는 것을 어느 여자국회의원이 들고 나왔다는 보도다. 「쇼핑」「슈퍼마켓」, 하다못해 「도너츠」 등 외래어의 난무는 『문화적인 외침』이라는 거다. 「유럽」합중국? 이런 구멍가게민족주의(토인비)로 봐선 아직도 먼 얘기다.
하여튼 나쁜 것, 상서롭지 못한 것엔 서로 남의 나라이름을 갖다 붙인다. 영국에서 남성용피임구는 「불란서편지」로 통한다. 「프랑스」에선 그건 물론 「영국편지」다.
얼마 전 신문에 영국제 인기「텔리비젼」연속극 『콜디즈』를 사가라는 제의를 「이탈리아」사람들이 한편을 보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지난 2차 대전 중 독일 「콜디즈」포로수용소를 무대로 한 이 TV영화는 영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사람들이 이것을 『안 사겠다』고한 까닭인즉 알아보니까 아주 그럴 듯 하고 「논리적」이다. 『이 영화처럼 독일군인들이 둔하고 영국군인들이 다들 영악했다면 2차 대전을 1년 반정도면 끝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론 5년이나 끌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엉터리일게 분명하다.』
「슈미트」서독수상이 지난 연말 「로마」정상회담에 갔을 때 「로마」사람들의 태도가 어쩐지 냉랭해 좀 당황했었다는 건 이곳 외신기자「클럽」에서의 「가십」거리가 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일 안에서 번졌던 다음과 같은 「조크」와 관계를 갖는다.『서독주둔 NATO군소속「이탈리아」전차부대「탱크」엔「기어」가 4개 달렸다. 1개는 전진용, 나머지 3개는 뒤로 후퇴하는「기어」다.』어쩌다 이런 말을 퍼뜨린 장본인이 「슈미트」라는 오해를 받아 그를 보는 「로마」사람들 눈의 흰자위가 커졌다는 거다. 터무니없는 얘기라도 좋다. 문제는 『우리가 최고다』식 민족주의는 아직도 뿌리깊다는데 있다. 【런던=박중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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