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인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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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엄벌위주의 형벌제도는 자칫 법과 형벌에 대한 무감각만을 심화하기가 쉽다.
보사부는 상습 또는 영리목적으로 대마초를 수출입하거나 수출입을 위해 소지할 경우 최고 사형까지의 형벌을 과할 수 있는 법안을 성안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마초흡연을 중대시하고 이를 뿌리뽑으려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널리 퍼지기 전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대마초흡연 풍조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안다.
그 동안 대마초흡연풍조가 기지촌 주변과 연예계, 그리고 일부 학생층에 퍼졌던 것은 다분히 호기심과 그 해독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대마초흡연의 해독과 흡연이 범죄라는 사실만 잘 계몽했더라도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퍼지지는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이제는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계몽으로 대마초 흡연이 개인과 사회에 해독이 된다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가 충분히 알게되었다. 지금과 같은 단속과 계몽만 지속된다면 멀지않아 이 풍조는 사라지리라 기대된다.
본래 퇴폐적인 사회풍조를 사회에서 일소하는 방법은 여러 단계가 있다. 사회성원의 자각에 의할 수도 있고 자각하도록 널리 계몽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정부가 나서서 단속을 펴야할 경우도 있으며, 새로운 규제입법이 필수적일 때도 있다. 가능하면 그 방법은 강제성이 적은 초기단계일수록 좋을 것이다.
대마초 흡연문제도 지금같이 현행법에 의한 단속으로 소기의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 이상의 새로운 규제입법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만큼 처벌을 최고 사형까지로 강화하려는 새 대마관리법안을 어찌 과도한 조치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이 경우 현행 습관성 의약품관리법으로도 최고 7년반까지의 징역에 처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위혁의 일반 예방적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이를 사형까지로 대폭 강화해야만 할 합리적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안된 대마관리법안의 벌칙규정에는 마약법의 최고형벌과 형량이 똑같은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약과 대마초의 해독을 똑같이 취급하는 다분히 획일적인 사고의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약과 대마초가 인체 및 사회에 해독이 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해독의 심도나 속도가 엄연히 다른 만큼 법률적으로도 다르게 취급됨이 마땅하다. 마약과 대마초범죄를 똑같이 취급한다면 역설적으로 영리목적의 범죄자들이 기왕이면 마약범죄를 저지르려는 생각을 품게 할 가능성은 없을까.
대마관리법의 문제는 대마초규제자체에 관한 것보다는 형벌「인플레」를 예사처럼 생각하는 입법자세가 더욱 기본적 문제인 것이다.
툭하면 새로운 법을 만들고 법을 고칠 때마다 처벌규정이 강화되는 것이 최근의 입법현장이었다.
더구나 사형을 과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가 확대일로에 있다는 것은 아무리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사형제도의 존치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형제도의 금기성을 최소한으로 한정하기 위해선 해당범죄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사형제도의 보편화는 인명경시풍조와 인간정신의 황폐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깊이 인식 되어야하겠다.
정부가 구상중인 대마관리법안은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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