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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피운 면학의 꿈…박렬 의사미망인|외대대학원졸업 2주앞두고 타계한 박의숙여사|아들이 대신 학위증받아|외대등서 일어강의하며 공부한「학생교수」|고인영전에 조교수임명 발령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일본황태자 유인(현천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던 소위「대역사건」의 애국지사 박렬선생의 미망인 박의숙여사(58)가 만년의 향학열이 열매를 맺는 대학원졸업식을 2주일 남겨놓고 12일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27일 외국어대 졸업식에서 어머니를 대신하여 석사학위증을 받은 아들 영일씨(27·육군대위)는 바로 박여사 영전에 달려가 『어머님 생전 각고의 결정을 여기에 가져왔읍니다』고 울먹이며 학위증을 바쳤다.
박여사의 본명은 장의숙, 29세때인 1946년 박렬의사와 결혼한 박여사는 남편이 6·25때 납북된후 의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뜻에서 성을 박씨로 고쳤다.
동경여대를 나온 박여사는 지금까지 외대·국제대·홍익대등에서 일본어강의를 해오면서 74년 외대대학원에 입학, 학생교수로 유명했다.
박여사의 석사논문은 일본의 단시형의 최고라는 「바소」(파초)의 기행문을 연구한 『초풍배해의 확립』. 46배판 1백60「페이지」의 장편이었다. 지도교수 중촌리웅씨(외대대학원교수)는 『일본고전에 관한한 박여사를 감히 평가하는게 외람될정도』라면서 고인의 별세를 안타까와했다.
서울용산구 한강로동방「아파트」에서 같이 기거하며 여사의 논문을 도와준 김경화양(23·국제대3년)은 『새벽5시에 일어나 선생님방을 보면 이미 불이켜져 있었다』며 여사의 학구열은 젊은사람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일본에서 귀국한 딸 경희씨(26·재일교포부인)는 『살아서 학위를 받으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지었다. 난세를 살아온 풍운아의 부인으로 단 4년의 신혼생활을 빼고 평생을 홀로 살아온 박여사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표박(표박)의 길이야 말로 인생이다』라고 읊은 파초의 기행문처럼 그생을 마쳤다고 동료교수들은 애석해했다.
고인의 영전에는 생전에 그렇게 부러워 했던 조교수직을 임명하는 발령장이 놓여있었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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