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범 저|금서를 통해본 근대사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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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떠한 역사에서도 그것을 설명하는 사상적 측면과 거기에서 실천된 역사적 현실 사이에는 크든 작든 간격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역사를 이끌 사상이나 이념이 현실 앞에 너무 멀리 세워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연히 따라야 할 합리적 사상이나 이념을 외면한 현실의 지체나 왜곡에도 책임은 있는 것이다.
사상과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이같은 간격은 역사적으로 결국 사상이 제시한 역사의 귀결 쪽으로 인도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 속에서는 현실이 사상까지의 그 간격을 흔히 부인이나 박해로 메우는 것이 상례였다. 그것이 바로 사상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금서분서의 이름이었다.
여기서 저자 한 교수는 역사 변화의 폭이 컸고 사상고 사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도 컸던 서구 근대사의 한 측면을 금서들을 통하여 사상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 사상사에서 그 근대의 성격과 골격이 짜여지던 저 문예 부흥기로부터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가장 발랄한 2백여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멀리 중세적 「가톨릭」 규제에서 인간과 성의 해방을 주장한 「복카치오」의 『데카메론』, 미·불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던 「토머스·페인」의 『인문의 권리』 나 『이성의 시대』 등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금서에 대한 사상전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이같은 사상들은 당시로는 금서였지만 오늘의 역사에서는 모두 근대의 위대한 추진력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여기에 소개된 금서들이 사상의 내용이나 그 전개 형태는 비록 달랐다 하여도 그것들은 모두 박해와 수난의 대상들이었다는 역사의 상황에서는 일치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그 같은 사상의 창조력은 바로 사상의 「선각자들이 처했던 당시의 상황과 문제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상에 있어서의 역사인식의 기반을 강조하고 있다.
금서를 통하여 본 역사에 대한 사상적 접근, 그것은 대단히 흥미 있는 방법의 한 갈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를 같이 아파하며 되새기는 사상사적 재창조이기 때문에 서구의 사상사가 아닌 바로 우리의 사상사 속에서 먼저 접근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또한 간절하다. 저자는 법학자·동국대 교수.<최창규(정치사·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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