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화가 소정의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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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경산수로 유독 금강산을 많이 그려온 소정 변관식 화백은 생시보다 뒷날에 더 평가될 것으로 기대되는 작가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화필을 익히기 시작해 지난 18일 77세로 작고하기까지 약60년 동안 줄기차게 정진, 『변환 자제하는 독창성 있는 화법』을 이룩함으로써 한국 근대미술사에 두드러진 위치를 닦아 놓았다.
1899년 서울 태생인 그는 외조부 소림 조석진씨가 그림 배우는 것을 만류했다고 하지만 역시 청년시절을 외가에서 살며 그림과 인생을 배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후 관립 공업전습소에서 도예 기능을 배우기도 했고 조선서화 미술회에 나가면서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화업이 시작됐다. 소정의 초기 그림은 심전 안중식씨의 영향을 받아 이상범·노수현 제씨와 비슷한 산수. 그러나 1930년대 이후 갈필 특유의 메마르고 깔깔한 화면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 점은 그의 평생의 변함없는 화격을 규정지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성격의 반영이다.
소정은 40세 전후한 8년 동안 금강산에 묻혀서 실경을 「스케치」한 일이 있다. 그래서 그는 금강산에 탐닉한 나머지 그 후의 가장 중요한 화제로 삼았으며 겸재 정선과 더불어 금강산을 가장 산답게 그린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내금강 금강문』(50년·미 국립역사 박물관)『외금강 왕류천』(53년·영국왕실) 혹은 『삼선암』등의 작품이 모두 금강산으로 좁혀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집스러울 이 만큼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깐깐한 성품은 작가적 역량과는 별개로 가정 생활면에서는 늘 넉넉지 못했다. 최근의 몇 햇동안 화상「붐」이 일어 좀 펴이기는 했지만 그 대신 말년 작에선 더 큰 야심작을 보이지 못했다.
변씨는 서라벌예대·수도여사대 강사로 교단에선 이외에는 학교와도 인연이 멀었던 셈. 끝내 예술원에도 들지 못하고 말았는데, 다만 말년에 국민훈장국민장(64년) 5월 문예상(68년)을 받았다.<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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