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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시책의 일원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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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국에서 기계설비를 도입할 때. 우리는 아직도 설비 자체뿐만 아니라 생산기술이나 「노하우」, 심지어 소용원자재나 부분품·기계관리부분까지 한꺼번에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금도 기술도 없었던 시절에는 어쩔 도리 없이 불가피했던, 소위 「턴·키·프로젝트」방식도 그 나름의 잇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비공정이 일관성을 가지고 생산효율이 증대된다는 점에서만 보면 기업가 측엔 오히려 유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일괄 도입방식은 따지고 보면 전후의 경제협력시대에 유행했던 신식민주의적 협력방식의 잔재이기도 하다.
인도·「파키스탄」등 동남아 개발도상국의 50년대 자본재도입에서 주류를 이루었던「턴·키·프로젝트」방식은 결국 기계에서 부품·원자재판매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독점하겠다는 차관공여 측의 이익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플랜트」도입은 우리의 장기적인 공업화정책이나 당면한 국제수지개선에 이롭지 못하다는 점은 쉽게 짐작된다.
새삼스럽게 「국산화촉진방안」을 만들고 설비·기술의 국내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욕은 이런 뜻에서 원칙적으로 옳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부처마다 다양한 국산화촉진 방안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중의 일부시책들은 이미 실행되어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갈래의 노력을 일원화하고 정부의 주요 경제개발 정책, 외자도입 정책이나 투자·무역계획과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는 종합대책이 아직 없었다는 것이 흠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설이나 기술만 들여오기 위해서 설치·운영되고 있는 외자도입심사기구가 제대로 활용되면 불급한 기계·기술의 도입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의 설계능력이나 기술축적이 모자라고 수요자의 선호에서도 광범한 외자의존 경향이 일반적인 처지를 보면 외자도입방식의 개선은 투자정책이나 경제개발방향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국산화의 촉진은 시설재·원자재·중간재 또는 기술부문 등으로 세분하여「마스터·플랜」이 세워지고 공업화 진전도와 결부된 합리적인 연차계획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투자심사제도가 확립되고 국산화 투자원칙이 밝혀진다면 기업에서도 구태여 비싼 값으로「플랜트」를 일괄도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기술개발 능력이 국산화의 진전에 따른 비효율을 어느 정도 극복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기술축적이나 국내공급 능력을 돌보지 않은 기계적인 일정율 의무화로는 오히려 경제적 손실만 더 크게 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간 수요자들도 모든 것을 도입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지양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설비·공정·기술의 국산화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국산자본재 투자의 특별상각 인정이나 민간의 시작개발보조금제도, 각종 기술용역기관의 육성이 실현된다면 이 부문의 민간기업의욕이 크게 증대될 것은 물론이다. 이런 여러 지원과 지속성 있는 계획만 추진된다면 당면한 국산화촉진은 하루아침에는 어렵다해도 장기적으로는 실효를 거둘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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