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중심 임금 개편, 무한경쟁 내몰면서 성과는 안 오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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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옛말에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사람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먹고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의식이 풍족하면 예절을 알고 광에서 인심 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라고 할 만하다. 매슬로의 욕구발전 5단계설도 서구적 언어로 이러한 진리를 설파한 것이다. 먹고, 자고 하는 등의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면 안전, 인정, 자아실현 등과 같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도 그렇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극단적으로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용과 그 고용의 안정은 노동자에게 매우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해고는 사회적 살인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 이윤 획득을 목표로 하는 기업인과 경영학자에게 어떻게 하면 노동자에게 효과적으로 일을 시킬 것인가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자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실험이 진행됐고, 이른바 동기부여 이론도 나왔다. 생산을 통제해 생산된 물건만큼 임금을 주기도 했고(개수임금), 노동시간을 통제해 시간단위 임금이 나오기도 했다. 성과목표를 주어 관리했으나 얼마 안 가서 노동자들에 의해 거부됐다. 노동자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 뿐 아니라 성과에 기여한 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리 계산된 이윤목표 달성을 위해 성취하기 어려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즉 생산량이 늘어나면 생산단가가 떨어져 임금총량의 상승은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시도는 기술혁신에 따라 대량생산 시스템, 다품종 소량 유연생산 체제, 그리고 지식기반·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각 경제주체에게 임금에 대한 관심과 강조점은 다르다.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므로 당연한 일이다. ▶기본급과 수당 등 임금구성은 어떻게 할지 ▶기본급을 근속으로 결정할 것인지 ▶일(직무)의 중요성(가치)으로 할 것인지 ▶능력 또는 성과로 할 것인가(임금체계) 같은 고려사항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으로선 임금수준을 총액인건비 안에서 관리하며, 나아가 생산성과 연계된 단위당 노동비용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임금에 관한 모든 쟁점은 노동과정, 기술적 조건, 시장조건, 경영철학, 조직문화, 노사관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100여 년간의 경영학 연구에서 성과주의의 효과는 끝내 입증되지 못했다. 성과를 높이려면 성과와 보수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다수의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조직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고용안정 보장, 노사 화합과 일체감 조성으로 직무만족을 높이고, 노동의 자기 주도성을 실현하는 것이 성과 향상의 첩경이다. 성과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무늬만 연봉제란 말이 있듯이 수십 년간 정부와 기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주의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은 물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시스템, 대등한 노사 상생의 문화, 사회안전망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