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규제와 공정 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경련의 『신년도 경제 운용에 관한 보완 건의』를 계기로, 새삼 기업 의욕의 저상과 그책임 소재에 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듯 하다.
기업이 사회적 여망에 충실히 부응하지 못하니까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기업은 정책에 협조하되 정책은 기업의욕을 북돋워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는 그것이 이 나라의 유사 경제 단체의 건의로 제기된 이상 일단은 기본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라 하겠으며, 시비 그 자체에 문젯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향이 이 나라 경제의 효율적인 순환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자유 제 기업의 역기능>
원래 자유 기업 주의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 환경의 변천에 따라서 그 인식이 바뀌어 온 것이므로 단정적으로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전적 자본 제 하에서는 정부의 간섭이 적을수록 국민 경제와 사회 후생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지만, 자본 집중과 대량 생산 체제가 확립된 현대 선진 자본 제 경제에서는 시장 경제 논리의 역기능을 정부가 상살 시키거나 규제함으로써 공정한 배분과 완전 고용을 실현시키도록 하는 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자유 기업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국민 경제의 발전과 사회 후생 증대에 더 기여하는 방향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우리의 현실에서 정부와 기업, 그리그 소비자로서의 국민이라는 삼각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본질 문제에조준해서 정책의 개입 한계를 논의하는 것이 순리다.

<정책의 개입 한계>
다음으로 자유 기업 주의는 자본 제 경제의 본질적 속성이므로 자유 기업주 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체제 부인과 통한다는 본질 문제를 고려할 때, 정부의 기업 활동에 대한 개입은 시장 경제의 역설을 배제하거나 규제함으로써 시장 경제의 장점은 살리되 그 폐단은 줄인다는 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진실로 기업인들이 기업 의욕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면 그 원인이야 어디 있건간에, 그리고 또 그 책임이 어느쪽에 귀속되어야 하건간에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할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부 개입이 시장 경제의 역기능을 배제하거나 완화시키기 위한 것에 한해 이루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그 한계 이상의 것이냐에 따라서 시정 또는 조정의 방향은 스스로 자명해 질 것이다.
정부는 현재의 정책적인 개입이 시장기능의 역기능에 대한 시정 조치 만이라고 자신하기는 어려운 입장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반면 기업가들은 무한한 기업 자유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보증되는 경우가 아니면 규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솔직이 말하여 지금의 상황은 정부 규제나 개입이 시장 경제의 역기능 조정이라는 한계를 지키고 있다고 인정하기는 약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때문에 기업 의욕이 저상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일단은 평가할만하다.

<정부 지원과 간섭>
물론, 수출 증대와 획기적인 산업 발전 등 국민 경제적인 긴급 과제를 추진키 위해서는 민간 기업을 도와주고 격려키 위해 필요 이상의 개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원은 지원이고, 경영은 경영인 것이므로 민간 기업의 경영은 기업가 고유의 영역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 관계를 이탈하지 않는 한 경영에 대한 외부 간섭은 원칙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순리다.
그러므로 국가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화로 지나치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가 기업이나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그 기업이 지원 목적대로 육성되고 성장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소득을 파생시켜 국민 경제의 순환과 성장에 직접 간접으로 공헌케 하고자 함이지, 기업 경영에 간섭키 위해서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지원 자금이 목적외로 유출되거나 정부 지원을 빙자해서 독과점적 조작을 일삼는 경우와 같은 「룰」 이탈을 정부가 감시하는 이상의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 경쟁 조건>
다음으로 산업 및 기업 정책을 사회 정책적인 안목에서 다루려는 듯한 경향이 근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일반 여론도 경제 정책 문제와 사회 정책 문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음은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 정책적인 배려는 원칙적으로 재정 정책에서 전담되는 것이어야하며, 그 자원 조달은 조세 정책 수단에 의존해야 한다.
재정 부문에서는 경제 부문에 우선하면서 경제적 척도에서 움직여야 하는 기업에 사회 정책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말해서 본말이 바뀐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정부의 의욕적인 산업 유도와 정책 목표 추구 때문에 산업간 기업간의 경쟁 조건이 다기화·다양화함으로써 일반적 경쟁 조건이 축소되어 가고 있음은 이 나라 경제의 장기적인 효율화에 「마이너스」 작용을 할 것임을 깊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오늘날 금융 자금의 종류는 너무나 다기화 되어 있어 차등 금리 체제가 예외가 아니라 보편화의 관계로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경쟁 조건이란 사실상 소멸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 문제다.
요컨대 정책은 일반적인 경쟁 조건의 확대와 시장기능의 역기능을 배제한다는 대 원칙을 전제로 기업을 지도해 나가야 할 것이며 반면, 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받을 수록 간섭을 받게 된다는 「새뮤얼슨」의 경고를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산업이나 기업이 애로에 봉착할 때 마다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것은 아직도 이 나라 경제계가 성숙성을 발휘치 못하고 있는 반증이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