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신랑·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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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결혼연령이 낮아지고 있단다. 신랑은25·7세, 신부는 21·8세. 자식을 일찍 낳아 노후에 좀 편히 살겠다는 생각에서란다.
옛날아 비기면 빠를 것도 없다. 「유럽」의 중세에는 남자의 성년이 14세, 여자는 12세였다. 여자가 2세 빠른 것은 『잡초는 빨리 자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때는 성년이 된지 2, 3년 후면 결혼했다. 역사상 가장 어린 신랑은 1478년에 결혼한 「요크」공이며, 그 나이 4세였다. 신부 「노포크」공작부인의 딸은 이때 5세였다. 중세 때에 결혼을 서두른 것은 일손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신부의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경우가 흔했다는게 다르다. 역시 부려먹기가 편해서였을 것이다.
빨리 낳아야 빨리 자식 덕을 본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이래서 조혼의 풍습이 생겼다. 「간디」도 13세에 결혼했었다. 조혼하는 인도의 습관을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가난은 가난을 낳을 뿐이다. 자식이 많던 흥부는 더욱 가난해지기만 했다.
이래서 「유럽」에서는 중세말부터 조혼을 억제하기 위해 일정한 자산이 없으면 결혼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농가의 장남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는 결혼하지 못하도록 한 지방도 있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애란에서는 아직도 만혼의 풍습이 남아있다. 50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가 16%나 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는 「하이틴」부부가 적지 않다. 10대라도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일자리도 많고 살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빨리 독립하여 스스로의 행복을 찾겠다는 뜻도 들어 있다.
미국에서의 조혼은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를 구가하던 60연대에 현저하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이 동안에 인구증가율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노후에 자식 덕을 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만큼, 오히려 자식을 짐으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직하기가 어려웠던 60년대에 노총각이 흔했다. 요새 와서 대학을 나오자마자 결혼하는 신랑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취직률이 높아졌다는 얘기도 된다.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결혼연령이 낮아지는 것과 반비례해서 인구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노후에 자식 덕을 보겠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에 40대의 한 교수가 신병 끝에 투신자살했다. 한창 의욕에 부풀어 있었을 삶을 병이 무참히 꺾어버린 것이다.
만약에 충분한 사회보장제도라도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그가 요새 신랑들처럼 일찍 결혼하였더라면 뒤에 남은 자녀들이 자살할 수 있을 만큼 장성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요새 세대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자가 되어가며 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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