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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선거용 인증샷 찍으러 추모식 달려간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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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전현충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4주기 추모식.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2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폭침 사건 4주기 추모 행사는 이전과 달리 각계의 관심이 높았다. 참석자들만 봐도 그렇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관진 국방부 장관,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유가족들과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를 포함해 창당대회를 몇 시간 앞둔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천호선 정의당 공동대표 등 여야 정치 지도자들도 총출동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도 처음으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는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던 통진당 오병윤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의 반대로 입장하지 못했지만 추도식 참석을 시도할 만큼 올해는 뭔가 달랐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유족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유족은 “감사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추모식 직후 묘역 참배도 없이 어디론가 휑하니 떠나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나마 묘역을 찾았던 현역 광역시장은 헌화한 뒤 말 붙일 틈도 없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또 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어떤 예비 후보는 유족들을 기다렸다는 듯 껴안고 침통한 모습을 보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추자 차에 올랐다.

 몇 시간 뒤 이들의 트위터와 블로그에는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하거나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는 사진이 올라왔다. 지방 교육감과 시장에 출마 선언을 한 예비 후보는 아예 자신의 이름과 ‘교육감’ ‘예비후보’라고 씌어진 붉은색 홍보성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현장에 있던 유족은 “추모하러 온 것인지 선거운동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정치 공방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 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천안함 폭침이 지금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억울한 장병들이 수장됐다”는 박원순 시장과 “확률로 얘기하자면 홀인원이 한 다섯 번 연속으로 난 것”이라고 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과거 발언도 다시 꺼내들었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천안함 폭침 사건을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간판을 바꿔 달면서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우리 당은 천안함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를 존중한다”며 “심재철 의원은 철 지난 색깔론으로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반박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46명의 청춘이 산화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남북 대결의 상징이다. 정치 공세의 소재로 변질되는 걸 언제까지 봐야만 할까.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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