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스펠드」국방백서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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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럼스펠드」미 국방장관이 새해 국방백서에서 제시한 대한방위공약은 전임 「슐레진저」장관과 기본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럼스펠드」장관은 동북아의 안정과 군사균형 유지에 필수적인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대외군사판매차관을 통해 한국군 현대화를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도 동북아를 서구와 함께 미국의 두 방위거점으로 보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진포진을 세계전략 개념의 주축으로 삼고있다. 국방백서는 이를 『서구와 동북아가 미국의 안보에 중요하기 때문에 두 지역 중 한쪽에서 전면적 분쟁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다른 쪽에서 전진방어선을 지키는 비핵군병력의 배치가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하나의 대규모 전쟁과 또 하나의 국지전에 맞게 전략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 소 분쟁을 전제한 이른바 「1·5전략」이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전략개념아래선 주한미군이 한국의 안보라는 지역적 필요에서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한 세계전략적 필요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적어도 방위개념상으로는 유럽만은 못해도 동북아가 핵심적인 비중을 갖고 있음이 국방백서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다만 이번 국방백서에선 미국의 대외방위 자세가 인지공산화직후의 흥분에서 벗어나 차분한 평상상태로 돌아간 듯한 흔적이 상당히 눈에 뛴다. 그것은 대한방위공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지공산화 직후 「슐레진저」가 밝혔던 한반도 분쟁시 전술핵무기의 사용을 고려하겠다든가, 공산침략 시 적의 심장부를 강타하겠다는 등의 적극적 용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이라든가, 북괴의 남침 시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구상이 기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역할과 중요성도 따로 때어서가 아니라 동북아란 지역적 방위개념 속에 용해시켜 놓았다.
특히 이번 국방백서에선 지역방위에서의 총합전력화개념 (Total Forces Concept)이 더한층 진전된 느낌이다. 이 개념은 지역방위의 경우, 미국과 지역 당사국의 군사력을 합쳐 총합 전력화하는 것으로서 동맹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당사국의 방위책임 및 부담을 증대하자는 것이다.
금년 10월1일부터 시작될 77회계연도부터 대한 무상군원을 중단하고, 군사차관으로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려는 것은 이 개념의 「모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국방백서가 주한미군의 도발견제기능과 북괴남침 시 『미국은 돕고 한국은 싸운다』는 양상을 부각시킨 것도 이와 연결된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한국과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적어졌다 해서 미국의 대한방위태세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인지공산화로 동남아에서 후퇴를 겪은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럼스펠드」장관도 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과 동북아의 안정에 직결된다는 점을 상당히 강조했다. 다만 주한미군이 한반도분쟁 재발시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을 꺼리는 미국 안의 일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고충이 있었던 것 같다.
「인도차이나」나 「앙골라」사태를 보면 미국의 대외정책수립에 있어 이러한 취약구조는 우리의 경우에도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문제다.
대외방위공약에 대한 미국의회와 국민의 기피증은 지상군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을 수록 거세진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의 지상군 개입 없이도 북괴의 단독도발을 격퇴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것이 미국의 대한방위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첩경일 것이다.
우리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불변요소는 역시 자주방위력임을 절감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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