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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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회=이곳에 한국의 집단이민이 시작된지 벌써 10년,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 성급한 시비도 많았읍니다만 이제 대부분이 정착의 기초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예기치 못했던 고통과 어려움이 많았을 줄 믿습니다.
자기 나라안에서 생활터전을 옮긴다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고국을 떠나 미지의 이역만리로 올 때에는 결단도 결단이지만 그 동기도 심각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곳에 오시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김기준=대구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했으나 세금에 쪼들려 도저히 살기가 힘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섰읍니다.
▲김종웅=6·25사변을 맞아 황해도연백을 떠났습니다. 인천에서 채소농사를 하다가 이왕 고향을 떠났는데 넓은 곳에 가서 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보자고 왔읍니다.
▲김건회=신의주에서 살다가 6·25사변 통에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내려와 살았습니다. 넓은 곳에 가서 속 시원히 살아보자고 왔읍니다.
▲김병익=서울에서 죽 살면서 사업도 해봤지만 4·19, 5·16의 혼란을 거치면서 사업에 실패를 했지요. 한자리에 앉아 몰락하느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심기일전하여 무엇이든지 해보자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하면 살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고 왔읍니다.
▲김갑인=부산에서 교편생활을 할 때는 학생들에게 조국을 등지고 이민을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좁은 땅에서 격심한 생존경쟁을 이겨나가기가 힘들어 길을 찾기 시작했읍니다.
▲사회=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일은 무엇인지요?
▲김기=처와 아들 6형제를 데리고 이민을 왔는데 나 혼자 농장에 남고 가족들은 장사와 공사장품팔이로 한동안 헤어져 살았읍니다. 말은 안통하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느냐』고 스스로 반문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읍니다.
▲백남수=한국을 떠날 때 무일푼으로 왔읍니다.「카스트로」병영에 있을 때부터 한동안 품팔이를 했는데 처음 시작한 양계가 성공해서 이제는 아들을 의과대학에까지 진학시켰읍니다.
▲사회=「브라질」사람들의 이곳 농장이민에 대한 태도는 어떻습니까?
▲김병=우리가 신용을 잘 지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점이나 은행에서 우리농장 사람이 가면 신뢰감을 갖고 같은 조건이면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백훈석=차별대우는 물론 없고 오히려 이곳 사람들보다 후대를 받는 경우가 있죠. 제가 다니는 성당의「돈·제랄드」주교께서 우리를 도와주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브라질」사람들이 은행에서『왜 한국인에게 몇10만「크루제이로」(1「크루레이로」 는 한화 70원)씩 융자해 주면서 우리에겐 안 해주느냐』고 불평할 정도로 근면하고 신용있는 한국인은 대우를 잘 받고 있읍니다.
▲김종=과거 이민들이「브라질」사람과 소송이 걸리면 무조건 패소했지만 우리 농장의 경우는 한두차례 소송이 있었는데 모두 이겼읍니다. 한번은 노동쟁의가 있었는데 변호사가 판사에게『당신은 이 고장에 없어도 되지만 한국인은 이 고장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싸울 정도로 한국인역할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회=과거 한국의 농업이민이 번번이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백훈=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그나마 자신도 없고 끝까지 노력해 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정부에서 아무런 사전계획이나 장기적인 대비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실정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병=농사도 안해 본 사람이 도시에 나갈 목적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와야합니다. 정부에서는 사전에 충분한 현지답사를 통해 기초조사와 장래성을 알아봐야 할뿐만 아니라 이민을 보낸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야 합니다.
▲사회=이민희망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기=약속을 지켜 일할 각오만 되어있으면 땅은 얼마든지 있고 또 성공할 수도 있읍니다. 문제는 각오가 어느 정도 되어있느냐 입니다.
▲김건=사전에 몇가지 계획을 세워서 와야하며 어디에 가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는 각오와 생활력이 있어야합니다.
▲김종=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병=정부에서도 성공 못 할 사람은 가차없이 말려야 합니다. 그리고 애매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이민「브로커」들을 없애고 공정무사하게 이민을 추진해야합니다.
▲사회=그러니까 이곳에 온다고 한두해에 성공여부가 판가름되는 것은 아니고 몇 년 동안은 피눈물나는 고생을 각오해야 되겠군요. 본인의 인내와 열성, 근면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정부당국의 주먹구구식이 아닌 정책의 뒷받침이 아쉽다는 게 여러분의 소망인 듯 합니다. 여러분이 초창기의 개척자라는 데서 큰 고통을 겪으셨겠지만 다음에 오는 분들을 위해 값진 경험과 교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참석자
성명 연령 출 신 소유토지 농사종류
김병익 57 황해 안악 240ha 보통작물 양계
백훈석 64 평남 덕천 74" 과수·딸기
김종웅 65 황해 연백 28" 과수·소채
김건회 55 평북 의주 36" 보통작물 양계 소채
백남수 60 평북 운산 54" 양계·소채
김기준 67 경북 성주 45" 보통작물 서채
김갑인 62 함남 원산 72" 조림(오동)
▲일시 : 1975년 12월 31일
▲장소 : 「브라질」「파라나」주「산타마리아」한국이민촌
▲사회 : 본사 허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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