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간의 꿈을 성취시키는 서수|병신년 세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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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76년 새해는「용」해다. 간지로「신」연은 용이 되기 때문에 용년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용은 실재한 짐승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아는 일이지만 누구나 용을 알고 있고 또 용이야기들을 한다. 그렇다고 용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다. 다만 환상의 세계에서 또는 희미하고 몽롱한 가운데 용이 승천했다든가 용이 꼬리를 치고 지나갔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용 이야기는 중국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곳에 전파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기 있었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의 좌협에서 태어난 용녀로 미인이었다고 전한다. 또 처용은 동해룡왕의 아들로 신라조정에 들어가 왕을 보좌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제에서는 금강에 용이 있어서 당군이 수로로 들어오다가 피해를 보아 백마로 미끼를 삼아 용을 낚았기 때문에 백마강과 조룡대란 이름이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국 도처에 용자가 붙은 지명이 있고 사람의 이름에도 용자를 넣는 일이 많다. 또 사람들은 용꿈을 꾸면 좋다고 하며 용꿈을 꾸고 아들을 낳으면 귀자를 얻게 된다고 믿고 있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거나 그러한 꿈은 길몽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용꿈이나 꾸자』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민족은 이처럼 용을 서수로 치며 길조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위대하다고까지 여기는 생활관이 있다.
서수로서 용은 승천함으로써 뜻을 성취할 뿐 아니라 인간의 꿈을 키워준다고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세보다는 천계를 동경하고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데 인간은 천계에 갈 능력이 없으나 용은 승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초인간적 능력을 부여하고 이상화시켰다.
십이지의 동물들 가운데 호랑이(인)나 말(오) 도 있지만 용은 그것보다도 큰 동물이다. 호랑이가 맹수이기는 하나 용 다음에 간다. 말(오)과 호랑이(인)는 때로 기피되고 특히 여성에 있어서는 팔자가 세거나 걷잡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견해도 있으나 용띠에는 그러한 금기가 없다. 융화와 적응의 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민간에는 용이란 잉어·뱀이 오랜 연륜을 쌓으면 용화해서 승천할 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즉 노숙의 완성은 용으로 화해서 천계로 간다는 것이다. 어부가 잉어 고기를 먹으면 용왕의 노여움을 산다든가 해서 출어하지 않는 것도 용을 숭상하는 마음에서였다.
용왕은 또 수신을 상징한다. 대해· 하천·호수·천정에는 용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었고, 해중에는 용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고의 복과 락과 보화가 있는 것으로 여겨 「유토피아」화했다.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종패들이 용궁에 가면 가득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용궁은 꿈의 세계요, 기적의 세계로 인정돼 왔다.
용녀가 호중에서 사람을 유혹한 이야기로는 개성의 박연폭포가 있다. 또 용해의 세시풍속에는 설날 이른 새벽 우물에 가서「용알 뜨기」하는 풍속이 전한다. 설날 용이 우물에 알을 낳고 그 알을 뜬 사람은 연중 복과 락과 부귀가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우물을 제사하고 용왕굿을 하고 용왕신을 위하고 기우제를 지낼 때에도 생명의 원천인 물을 얻기 위해서그 담당자인 용왕과 교섭을 해왔다. 그러한 뜻에서 용은 해양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용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 형상은 회화적으로 형상화되어 표현되고 있으나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용은 우상화되어 우리 마음과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임동권><중대교수·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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