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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어 3인이 말하는 중년 배낭여행의 매력

중앙일보

입력

1 베트남 싸파에서 깟깟마을 아이들과 한동익씨. 2 모로코의 ‘쉐프샤오웬’거리를 걷고 있는 한동익씨. 3 내몽고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이규금 교수. 4 한동익씨와 아들 태원준씨가 베트남 ‘후에’에서 씨클로를 타며 즐거워 하고 있다. 5 이탈리아 폼페이 최후의 날 유적지에서 이규금 교수와 그의 아내. 6 곽미경씨가 체코 프라하의 존 레논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균 나이 77세. 4명의 ‘할배’ 배우가 배낭을 메고 스페인 곳곳을 누빈다. ‘꽃보다 할배’를 보고 50~60대 중년들이 자극을 받은 것일까. 배낭여행을 떠나는 ‘5060 꽃중년’이 늘고 있다. 가까운 동남아부터 유럽, 아프리카 오지까지 여행지도 제각각이다. 그들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 이유는 뭘까.

“진짜 매력은 준비할 때의 설렘”- 초보 배낭여행족 곽미경(51·교사)

 나이 들어서 무슨 배낭여행이냐구요? 여행사가 정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보다 여행자의 상황에 따라 일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덜 힘들었어요. 단체여행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장소도 천천히 거닐면서 감상하곤했죠.

 배낭여행을 처음 경험한 건 9년 전. 동료 교사 5명과 자녀동반으로 떠난 서유럽 여행이 첫 배낭여행이지요. 지난해 7월 남편과 동유럽으로 두 번째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 도착해 여유롭게 호수를 바라봤어요. 단체여행으로 할슈타트를 방문했던 지인은 고작 30분 관광한 게 전부였다고 하더군요. 현지인들과 어우러져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죠. 부부가 모든 일정을 상의하고 온종일 함께 돌아다니니 그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들도 많이 하게 됐어요. 젊은 시절 여행을 다닐 때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더군요. 사실 여행의 진짜 매력은 준비 기간 동안 느끼는 설렘이죠.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쌓는 재미도 쏠쏠해요. 영어회화가 능숙하지 않은 탓에 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죠. 올 여름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어요. 막 배낭여행에 눈을 떠서인지,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 싶으면 주저 없이 배낭부터 꾸릴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나라 문화와 전통 배우는 재미”- 아들과 함께한 300일간의 세계여행 한동익(63·주부)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딸과 아들이 환갑을 맞은 제게 깜짝 선물을 했어요. 그 이름도 찬란한 ‘세계여행’이었답니다. 여행 일정에 맞춰 30년간 운영하던 작은 식당을 정리했고 아들(태원준·33)은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2012년 2월, 드디어 여행을 떠났죠. 10개월 동안 50개국을 다녔어요. 중국에서 시작해 동남아와 중동·유럽 전역을 돌았죠. 예순에 떠난 배낭여행,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힘들 땐 무조건 쉬고 식사도 잘 챙겨 먹었어요. 아들과 조금씩 속도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여행에 적응이 되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스리랑카’예요.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받는 것이 더 많았고 길을 물으면 주변 사람 모두가 달려와 도와줬죠. 여행의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기 위한 저만의 방법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배운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숙소는 작은 호텔이나 민박을 이용하고 음식은 재래시장에서 자주 먹었어요. 현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죠. 여행 후에 아들이 쓴 여행기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가 베스트셀러가 돼서 또 한번 큰 추억이 됐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남미에 가보고 싶어요. 지난 번엔 아들이 저를 이끌었지만 이젠 제가 아들을 설득하고 있네요. “아들, 이번엔 남미 어때?”

“여행 조건은 호기심·용기·정보”- 원조 ‘꽃보다 할배’ 이규금(65·목원대 교수)

 11년 전에 교환교수로 중국을 가게 됐어요.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유럽에서 41일 동안 여행한 게 배낭여행의 시작이었죠. 중국에서도 틈틈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2011년에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떠났습니다. 배낭을 메고 아시아·유럽·남미·아프리카 등 4개 대륙 28개국을 158일 동안 다녔지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렌터카를 몰고 이베리아 반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다국적 팀과 합류해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캠핑도 했어요. 게스트 하우스나 도미토리 같은 곳에 묵으면서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 새 나이를 잊게 되죠.

 세계일주를 다니면서 젊은 시절보다 한 발 넓어진 시각으로 여행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죠. 그래서일까요. 내가 본 세상을 혼자만 아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기 2권을 e북으로 펴내고 대학에서 ‘세계와 여행’이라는 교양과목도 강의하고 있어요. ‘여행’이 제2의 전공이 된 셈이죠.

 여행 앞에서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입니다. 일단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관련 영상과 여행기를 보면서 호기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계획을 세우고 용기를 내 실천해 보세요. 여행의 전제조건으로 돈·시간·건강을 꼽는 이가 많은데 가장 중요한건 호기심과 용기, 그리고 정보입니다.

<한진·유희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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