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의 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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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해 예산안이 일반회계 규모 2조3백61억원으로 확정되었다.
이 규모는 정부가 당초 제안했던 것에 비해 겨우 0.38%가 줄어든 것이다.
결국 국회는 예산심의를 통해서 국민 부담의 경감을 이룩한다는 본래의 뜻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비록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가는데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정부 부문의 비중을 늘려 가려는 성향이 바뀌지 않는 한 해마다 예산 요구는 늘어나겠지만 이를 재원의 염출이나 국민 부담, 또는 정부 사업의 선후 완급을 가려 적절히 조정하고 제동을 거는 것이 다름 아닌 예산심의의 본시다.
그렇다면 올해처럼 방대한 정부 사업 중에서 완급을 조정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거나 또는 이들 사업을 뒷받침할 재원의 조달 면에서 전혀 무리한 요소가 없었다고 판단했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이미 소득세법개정에서 입증되었듯이 새해 예산은 그 세입 구성에서 상당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설사 정부가 요구해 온 전년 비 60%증의 기록적인 새해 예산이 모두 불가피한 세출 요인을 반영하고 있다 해도 국회의 심의 자세는 그것이 대폭적인 국민 부담 증가를 결과할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지기를 바라 왔다.
그러나 국민의 이런 여망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예산심의 자세는 여전히 형식적이며 다루는 예산 규모에 비해 너무도 안이하게 처리한 듯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국회 심의가 하나의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좀더 진지하게 서두르지 않고 검토했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소득세 부분만 해도 그렇다. 비록 근로소득세의 기초 공제가 약간 올라가긴 했으나 실질적인 물가 상승과 가계비 인상을 고려하기보다는 다분히 명목적인 손질에 그친 결과가 되어 버렸다.
더욱 기이한 것은 소득세법개정 등으로 2백40억원의 세수가 삭감되었는데도 정부가 새로이 1백62억원의 추가 세입을 요구한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의회가 세입을 삭감한 만큼 세출은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다. 결국 예산 삭감에 맞선 새로운 세입의 추가는 국회의 예산심의의 명분을 크게 감소시키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하지만 예산 성립의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예산이 확정된 지금으로서는 오직 정부가 효율성 있게 집행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규모 자체가 너무 방대하고 적자 요인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재정 「인플레」의 우려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내년에도 긴축정책에 의한 물가 안정이 불가피한 점에 비추어 재정의 과도한 운영이 총수요 억제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될 가능성엔 진지하게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명목적인 경제 성장을 훨씬 상회하는 조세 증가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민간 부문의 경기 대응력을 고려하는 탄력적인 세입 집행이 또한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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