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벽 허물었어요 느낌으로 쇼핑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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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14면

해외에서 ‘우리랑 다르네?’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백화점이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이 아닌 북미·유럽 백화점 다수가 브랜드별 매장이 따로 없다. 뉴욕의 바니스백화점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마치 방으로 들어가는 듯한 칸막이나 브랜드를 구분 짓는 인테리어, 무엇보다 손님을 따라다니는 직원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쇼핑의 행태 역시 달라진다. 발길 닿는 대로, 눈치 볼 것 없이 물건을 보고, 만지고, 고른다.

새로 문 연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

이런 독립적 쇼핑 행태가 가능한 곳이 국내 백화점에도 생겼다. 13일 새로 문을 연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다. 이미 패션계 인사들 사이에선 ‘거기 가 봤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핫플레이스가 됐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백화점 전체를 거대한 하나의 매장으로 배치한 것 외에도 브랜드의 선택과 디스플레이 하나하나가 기존과는 크게 차별화됐기 때문이다.

일단 2~4층까지 컨템퍼러리, 여성캐주얼, 남성복이 차례대로 배치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통일된 옷걸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옷걸이에 붙은 작은 이름표를 보고서야 걸린 옷이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 있고, 한 발자국을 떼어 옆 옷걸이를 보면 또 다른 브랜드가 있는 식이다. 동선 자체도 들고 나는 단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사잇길을 다니는 것처럼 흩어져 있어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 없이 두루두루 살피도록 이끄는 구조다. 그야말로 대형 편집숍이 들어선 느낌이다.

기실 형태만 편집숍이 아니다. 실제 브랜드 구성도 그러하다. 편집숍이란 바이어가 매장 컨셉트에 적합한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의류·잡화를 골라 구성하는 원스톱 쇼핑(one-stop shopping) 매장을 뜻한다. 브랜드는 수백 개까지 구비되는 반면 수량이 적은 것은 것이 특징이다. 나만의 패션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1997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래 청담동·압구정동 개인 편집숍이 대세를 이루다 이제는 패션 회사마다 가장 탐내는 유통 채널이 됐다. 신세계 계열 편집숍 ‘분더숍’,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의 ‘비이커’, LG패션의 ‘어라운드 더 코너’ 등이 대기업이 뛰어든 편집숍들이다.

재개장한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는 매장 별 칸막이를 없애고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갤러리아는 그 편집숍 체제를 백화점에 적용, 기존에 없던 40여 개 브랜드를 새로 들였다. 베르수스, 언더커버, 젠치, 준지 등 국내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브랜드 외 Ilalia Nistri(이라리아 니스트리), Edun(이둔), Markus Rupfer(마르쿠스 루퍼)처럼 발음 하기도 힘든 생소한 브랜드들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 크리스토퍼 케인이나 오프닝세리머니처럼 해외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이름들까지 다 갖춘 수준이다. 이를 위해 백화점은 해외구매팀을 따로 만들어 직매입했고, 매장 수수료를 받는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했다.

갤러리아 측은 “해외에서도 막 뜨고 있는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켰다”면서 “단독 수입은 아니지만 최대한 국내 편집숍이나 다른 백화점에서 찾을 수 없는 제품들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데님·스니커즈·란제리 등 아이템별로 모아놓은 섹션 역시 국내 수입 수량이 적거나 한정판인 모델을 구비해 희소성에 포인트를 뒀다.

매장의 변신은 백화점이 SPA 브랜드의 공략과 병행 수입, 온라인 구매 등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찾은 돌파구다. 한마디로 가격보다 제품 차별화를 내세운 셈.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패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쇼핑족들의 실제 구매 성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같은 공간’이라고 분석한다. 브랜드가 주는 과시 효과와 패션 동조 현상이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의 개성을 내세우는 국내 소비자들의 진짜 속마음을 엿볼 기회라는 얘기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일반인들에게 편집숍 형태의 구매는 블라인드 테스트나 마찬가지”라면서 “스스로 스타일에 대해 확신이 있고, 해외 패션까지 꿰찰 정도로 관심 많은 이들을 강남 5%라고 봤을 때 이를 얼마나 넓혀갈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재우 동덕여대 교수(패션학)도 “고객에게 기존의 브랜드 충성도를 강요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감성 소비를 자극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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