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과제 많은 '어벤져스2' 서울 촬영 유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어벤져스2’의 양해각서 체결식 모습.

‘어벤저스2’의 한국 촬영에 대해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한 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부터였다. 그것은 ‘정치인 리본 커팅식 사진’과 더불어 따분한 사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양해각서(MOU) 체결’ 사진이었다(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관광공사 등의 관계자들이 (물론 칙칙한 양복을 입고) 양해각서 기념사진의 공식대로 뻣뻣하게 서 있다. 이런 사진의 필수 요소인 커다란 현수막도 빠지지 않는다. 그 위에 엄숙하게 이렇게 쓰여 있다. “대한민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

이 촌스럽게 거창한 사진을 보니 관련 당국이 ‘어벤져스2’ 촬영에 따른 해외 홍보, 관광 유치 효과를 지나치게 크게 평가해서 ‘한 건 했다’는 섣부른 성취감에 빠진 게 아닌가 싶었다. 비용 편익 분석에서 편익이 과대평가되면 비용을 남발하게 되니 걱정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리펀드 제도를 통해 미국 마블 스튜디오에 한국 촬영 비용의 30%를 현금으로 환급해 주고 촬영 기간 동안 대규모 도심 교통통제가 있을 것이라는 발표가 뒤따랐다. 그 대신 ‘어벤져스2’의 간접 홍보 효과로 인해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62만명 증가하리라는 장밋빛 예측과 함께 말이다. 양해각서에서 한국을 최첨단 IT 국가로 묘사하기로 했으므로, 국가 이미지에도 보탬이 되리라는 설명도 있었다.

영화 로케이션이 그 지역 홍보와 관광 증대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고, 그래서 여러 나라가 리펀드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효과가 ‘얼마나 유명한 영화인가’보다 ‘어떤 장르의 영화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관광 효과가 가장 큰 장르는 로맨스 영화다. 사람들은 ‘로마의 휴일’을 보고 오드리 헵번처럼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젤라토를 사먹고, ‘맘마미아’를 보고 그리스 섬의 하얀 계단을 오르며 푸른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 다른 장르 중에서는, 현실의 폼 나는 장소들을 배경으로 한 ‘007’ ‘미션 임파서블’ 같은 스파이 장르와 ‘다빈치 코드’ 같은 문화재 관련 미스터리?스릴러 장르가 비교적 높은 관광 효과를 지닌다.

SF와 판타지 장르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판타지 장르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뉴질랜드 관광 증대로 이어진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수려한 자연 경관 덕분이었다. 반면에 도시 공간이 SF?판타지의 배경으로 등장할 경우 대규모로 부서지고 폭발하는 파괴의 향연을 위한 장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게 관광 욕구를 일으킬까? 게다가 관람객은 그 공간을 자신이 여행갈 수 있는 현실의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여름에 개봉했던 ‘퍼시픽 림’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홍콩은 ‘어벤져스2’의 서울이 지향하는 바처럼 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미래적 도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신나게 부서지기 위해서다. 이 영화를 보며 “아, 거대 로봇과 괴물이 싸우며 부수던 그 스타일리시한 빌딩에 직접 가보고 싶어”라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퍼시픽 림’을 관람한 친구 몇에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홍콩에 가고 싶어졌는지 물어봤다. 모두 부정적인 대답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 ’퍼시픽 림’이 홍콩 배경이었어? 난 그냥 가상의 미래 도시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어벤져스2’를 보고 난 해외 관객의 소감이 될까 두렵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이 영화의 일부 영상을 한국 측이 홍보영상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문제는 당국의 홍보로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벤져스2’와 연관된 한국 홍보를 세련되게 할 수 있을지, 저 케케묵은 양해각서 사진을 보면 심히 의심스럽다. 영화를 통해 한국이 “세련된 첨단 국가”로 나오길 바란다면 관련 양해각서 체결식부터 그런 분위기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어벤져스2’의 한국 로케이션 자체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최소한 향후에 더 관광효과가 높은 다른 대형 영화 로케이션을 유인하는 물꼬를 틀 수는 있으리라. 다만 걱정되는 것은, 로케이션 비용 편익 분석에서 편익을 과대평가하면서도 편익을 극대화할 세련된 국가 홍보를 할 준비는 안 돼 있는 당국의 마인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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