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아브라함을 위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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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동심원(同心圓)은 중심은 같지만 반지름(半徑)의 길이가 다른 두개 이상의 동그라미를 의미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목표를 네개의 동심원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크기의 순서대로 첫째 동그라미는 사담 후세인 제거, 둘째 동그라미는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친미적인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 셋째 동그라미는 중동.카프카스.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자원 확보, 넷째의 가장 큰 동그라미는 미국의 패권 확립이다.

*** 이스라엘 안전에 왜 집착하나

그 중 둘째 동그라미에 "이스라엘 요소"가 숨어 있는 것이 문제다. 후세인이 제거되고 그 파급 효과로 중동 국가들이 민주화 쪽으로 개혁되면 이스라엘의 생존에 대한 아랍권의 위협도 영구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 미국의 기대다.

부시 정부는 왜 그렇게 이스라엘의 안전에 집착하는가.

구약성서 창세기 15장18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집트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준다고 약속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오늘의 팔레스타인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은 야곱이고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의 하녀 하가르한테서 낳은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조상이다.

이복(異腹)형제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 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아브라함을 계승하는 정통(正統) 싸움이 영토 싸움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이성(理性)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부시는 대선에서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졌다. 내년 대선에서도 그들의 표가 필요하다. 그들이 보기에 후세인은 아브라함의 적손(嫡孫)을 위협하는 존재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이스라엘 정책에 반영되려면 정부 안에 동조세력이 있어야 한다. 국방부에 포진한 골수 이스라엘 지지자들인 신보수파의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정책위원장 리처드 펄,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가 바로 그들이다.

국방부에서는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를 제외하면 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미국의 중동정책에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 유대계 트리오다.

이스라엘 정부가 1981년 유명한 제리 팰웰 목사에게 자보틴스키라는 큰 상을 수여했을 때 기독교 원리주의자들과 보수파 지식인들 사이에 이스라엘 지지의 연대가 형성됐다. 2002년 미국 시온주의 단체(ZOA)가 펫 로버슨 목사에게 상을 준 것으로 그 연대는 더욱 두터워졌다.

91년 걸프 전쟁 때 많은 아랍 국가가 미국 쪽에 가담한 것은 전쟁이 끝나면 미국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다는 양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가 약속을 지킨 것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역사적인 마드리드 회의다. 그 성과가 땅과 평화를 교환하는 해결 방식이었다.

*** 의심받는 부시의 중동정책

아들 부시도 포괄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부시 정부가 이스라엘의 극우파 총리 아리엘 샤론의 입맛에 맞는 평화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의심한다. 부시 정부의 중동 정책이 기독교 원리주의와 신보수파의 연대에 크게 좌우되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의심이다.

미국이 행여 '사담 이후'의 중동을 관리하는데 이스라엘을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면 이라크 전쟁 승리의 효과를 상쇄하고도 모자라는 재앙을 부를 것이다.

후세인 제거의 효과를 살리는 길은 국내에서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과 신보수파의 입김을 제한하고, 밖으로는 이스라엘 강경파를 견제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최대한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삭의 자손이나 이스마엘의 자손이나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 아닌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