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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콩고화」로 치닫는 레바논 사태-이근량 통신원이 마지막 본 「베이루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다음은 「레바논」전쟁을 취재하고 있는 본사 「베이루트」주재 이근량 통신원이 「베이루트」에서 마지막으로 송고해온 기사다. 이근량 통신원은 신변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취재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4일 일단 「카이로」로 철수했다. <편집자 주>
「레바논」사태는 최근의 미국 외교관납치와 「팔레스타인」장교 살해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2의 「콩고」화로 치닫고 있다.
그 동안 외국인에게만은 온건한 태도를 보여왔던 과격파가 2명의 미국 공보관원을 납치함으로써 이곳 사태는 국제문제화의 구실을 만든 셈이며 더욱 「팔랑헤」당원이 「팔레스타인」인 1명과 「시리아」장교 1명을 살해한 것은 확전의 신호탄으로 보아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각 자체마저 사태를 악화시키기에 충분할 이만큼 날카롭게 양분되어 있다. 「모슬렘」좌파의 총수격인 「카라미」수상이 의회에서 기독교도의 정신적이자 실질적 지주인「샤문」내상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군부「쿠데타」까지 기도한다고 발언한 사실을 가장 좋은 예로 들 수가 있다.

<시리아·이스라엘 긴장>
현재 이곳의 관측통은 현실타개책으로서 군부「쿠데타」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군부자체가 좌우 어느 파보다도 군사력에서 열세에 있지만 그래도 군의 개입은 군의 존재의의로 보아 당연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군의 개입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파 일색인 군이 뛰어드는 경우 국경을 접하고있는 유일한 「아랍」국인 「시리아」, 더 나아가 「시리아」와는 적대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의 개입이 틀림없어 제5차 중동전쟁으로까지 「에스컬레이트」된다는 논리로 군의 개입 역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장교의 피살사전 이후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16개 난민촌에 대한 정부측의 경계가 강화되고 「모슬렘」측에 대한 군의 작전설과 「프란지에」대통령 아들의 사망설 마저 파다하게 나도는 가운데 전투의 양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낮에도 전투 성역 없어>
기관포까지 동원되는가 하면 야간전투 뿐인 종전과는 달리 대낮에도 쉬지 않고 교전 중이며 더욱 성역이라 불리던 신「베이루트」에서 조차 총포의 피해가 없는 건물을 찾기가 힘들다. 또 부상자의 속출로 병원마다 초만원이며 미국「베이루트」대(AUB) 부설병원이 모든 의사에게 밤 시간 동원령을 내린 것도 최근의 일이다.
다행스럽게 아직 집단살육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양파간에 조직화된 대규모 전투가 있으리라는 점이다. 그 동안에도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와 재산피해를 냈지만 그래도 특정지역에서 위협적으로 총탄을 교환한 것이었기에 이 정도일 뿐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레바논」의 존립문제에도 직결된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팔랑헤」당원의 공격은 전면전의 선전포고와도 다름이 없다. 「팔레스타인」본거지에 대한 말살계획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으나 전투에 참가하려 해도 구실이 없었던 「팔레스타인」인으로 볼 때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것이며 「시리아」역시 내전개입 내지는 좌파지원의 이유가 되어 전면전은 시작만을 남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한쪽에서 4백∼5백명의 기동대를 편성, 선제공격을 가한다면 상대방 지역은 초토화될 것이 틀림없고, 다른 한쪽 역시 대규모의 정복전을 펴게 되어 전면전이라면 「베이루트」의 멸망을 뜻한다고 보겠다.
이렇듯 극한상황으로 달리게 되면서 「베이루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모두 출국을 서둘렀다. 미국인 납치사건 직후 외교사절단 대표들은 「카라미」수상을 방문, 앞으로 이와 같은 불상사가 재발할 경우 자국인 전원을 철수하겠다고 항의했으나 실제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외국인철수가 시작되었다.
1천여명이던 일본인은 현재 대부분 출국하고 몇몇 남자들만이 출국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그밖에 대부분의 외국인들도 이미 철수했거나 출국준비를 끝냈다.
외국인의 철수는 이곳의 유일한 영자지인 「데일리·스타」지가 얼마 전부터 미국 영국 인도 서독 등 각국 거주인들에게 등록을 촉구하는 광고를 연일 실림으로써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때를 맞추어 7천여 미국인의 철수를 위해 지중해의 6함대가 파견되리라는 이야기마저 파다하게 돌았었다.

<외국항공기 기착 안해>
그러나 외국인들의 철수에 가장 큰 문제는 「펜·암」 등 10여개의 항공기가 이미 2주 전부터 「베이루트」에 기항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비행기를 못타는 경우 유일한 출국은 「다마스커스」통로를 거쳐 「시리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베이루트」항공은 「사이공」최후의 「탄손누트」공항을 연장시킬 만큼 비행기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게 되었다.
계속 파국으로만 달리는 「레바논」전쟁 때문에 드디어 「레바논」의 상징인 MEA(미들이스트·에얼라인)」마저 「키프로스」이전을 검토할 만큼 심각한 양상에 접어들었다.
종교전쟁이 6개월째 접어드는 동안 MEA는 1일 평균 50만「달러」(약 2억5천만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고 또 앞으로도 사태가 호전될 전망이 없기 때문에 세계항공사상 유례없는 제3국으로의 본거지 이전을 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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