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후보 셋 줄사퇴 … 수상한 자본시장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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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투자업계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자본시장연구원(자본연)이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신임 원장 선임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서다. 끝내 차기 원장 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위원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본연 차기 원장 추천위 위원장인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금융투자협회 회장에게 밝혔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장은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 싱크탱크인 자본연에 출연한 기관의 대표(사원총회 의장)다. 그는 “원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이 자본연의 전통이나 내가 지키고자했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물러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자본연의 전신인 증권연구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

 추천위는 다음달 7일 임기가 끝나는 김형태 현 원장의 후임을 추천하기 위해 구성됐다. 금융투자협회와 한국거래소, 업계, 학계 등에서 7명의 위원이 참여했다. 지난달말 첫 회의를 열었고, 이달 7일에는 위원들이 추천한 인사를 중심으로 네 명의 후보를 추렸다. 후보에는 김 원장과 신인석 중앙대 교수 등이 포함됐다. 최 교수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모를 하자는 제안을 냈지만 상당수 위원들이 ‘그럴 필요없이 위원들이 추천하면 되지 않겠나’고 말해 따랐다”면서 “당초 많은 후보가 나올 줄 알았는데 네 명만 추천돼 좀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상황은 더 이상했다. 14일 김형태 현 원장이 이메일을 통해 지인들에게 ‘원장직에서 물러난다’는 이임 인사를 했다. 임기가 남은 상태인데다, 후보로 추천돼 연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미는 인사가 사실상 내정되면서 후보에서 물러난 것”이란 말이 돌았다. 이어 면접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18일 후보추천위의 두번째 회의에서 신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두 후보가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추천된 후보들이 알아서 줄사퇴한 것이다. 최 교수는 “자본연의 위상을 감안할 때 최소한 두 명의 후보가 응모해 유효 경쟁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재공모를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다수 위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결과 면접을 치를 단독 후보로 남게 된 이가 신 교수다. 그는 새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맡았고, 대통령 공약을 만든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몇달 전부터 자본연 신임 원장에 인수위 출신이 올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며 “시나리오나 각본에 따라 민간 단체의 장에 정부가 낙점한 인사를 내려보낸다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위원장으로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면서 “하지만 실제 모양새가 그렇게 돼 결과적으로 나 자신은 물론 자본연과 후보 당사자도 상처를 입게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유관단체와 업계 출신 위원 중심으로 각본에 따른 듯 뜻을 관철시켜 나가면서 최 교수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최 위원장이 밀었던 후보가 탈락하면서 반발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투협을 중심으로 한 출연기관들은 파행에도 불구하고 원장 선임 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나머지 위원들을 중심으로 추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최 교수를 뺀 상태에서 원장 선임을 강행할 뜻을 비쳤다. 자본연 차기 원장은 후보추천위가 최종 후보를 올리면 사원총회에서 최종 추인한다.

조민근·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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