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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뜨겁다 심상찮은 '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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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을 잇는 ‘안판석표 리얼리즘’의 정점.

 JTBC 새 월화드라마 ‘밀회’(정성주 극본, 안판석 연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방송 2회 만에 시청률이 4%에 육박했다. 18일 2회의 평균 시청률은 3.8%, 분당 최고 시청률은 5.3%까지 치솟았다(닐슨코리아, 수도권, 광고제외). JTBC 홈페이지의 다시보기도 이틀새 44만건 조회를 기록했다. 방송 직후 SNS의 호평도 뜨거웠다. “권력자들의 치졸함을, 안판석처럼 ‘사람이 뭘까’ 사고하게 하는 감독이 있었던가”(변영주 감독), “이렇게 잘 찍은 피아노 연주 장면은 처음 본다. 한국 드라마의 일취월장이 한눈에 들어온다”(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이다.

 금기에 도전하는 로맨스와 세태비판을 결합시키는 작가·감독의 호흡은 ‘아내의 자격’보다 진일보했다. 스토리와 캐릭터, 영상 모두에서 우아함과 격정, 신랄함이 한껏 버무려졌다. 어느덧 ‘안판석의 페르소나’가 된 김희애를 비롯한 박혁권·김창완 등 ‘안판석 사단’ 배우들의 호흡에, 필생의 캐릭터를 만난 유아인의 질주도 거침없다. 김희애·유아인의 본격 로맨스가 시작도 되기 전에 인기몰이중인 ‘밀회’의 흥행 포인트를 짚어본다.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교감하게 되는 ‘밀회’의 김희애(오른쪽)와 유아인. 배우들은 실제 연주 동영상을 수차례 관찰하고 몸과 손가락 동작들을 외워서 리얼한 연주 장면을 완성해냈다. [사진 JTBC]

 ◆위험한 로맨스와 상류사회=‘밀회’는 재벌가 예술재단의 기획실장으로 일하는 20살 연상녀(김희애)와 천재적 재능을 감춘 택배 청년(유아인)의 파격적 로맨스다. 연상녀-연하남, 기혼남녀 등 각종 커플이 등장해 왔지만 20살 연상녀라는 설정은 처음이다.

 안 감독은 자칫 뻔한 격정 로맨스에 클래식 음악계의 암투, 입시비리, 스폰서 문제 등을 끌어들였다. 의사 세계의 피 튀기는 정치드라마였던 ‘하얀거탑’때부터 계속된 안판석 스타일이다. 재벌 총수의 딸이자 막나가는 재단 이사 김혜은은 수 틀리면 부하직원이자 예고 동창인 김희애의 뺨을 때린다. 음대 교수들은 재단을 등에 업은 채 파벌 싸움을 벌이고 부정입학을 모의한다. 말이 실장이지 이들의 ‘시종’이나 진배없는 김희애는 적당히 속물스럽게 일상의 안정을 지킨다. 겉으론 고상하지만 허위의식 가득 차고 폭발 직전인 상류층 군상들의 ‘막장 정치’ 드라마가, 부유하는 듯한 색감과 카메라에 잘 담겼다.

 ◆음악과 화면의 조화=‘밀회’는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에 이어 오랜만에 클래식 음악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방송 직후 삽입곡에 대한 문의가 쇄도할 정도다. 음악의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연출과 유려한 카메라 워크 덕에, 매회 10~20분에 달하는 피아노 연주 장면에 클래식팬이 아니라도 빠져들게 된다. 표정은 물론이고 손가락과 몸의 동작을 일일이 외워서 하는 배우들의 연주 연기도 수준급이다. 매번 실제 연주 동영상을 분석, 관찰한 결과다.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엄청난 연주를 외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배우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2회에서 처음 만난 김희애와 유아인이 함께 피아노를 치며 교감하는 장면은 음악을 통한 에로티시즘을 제대로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연주를 마친 김희애가 “특급 칭찬”이라며 유아인의 볼을 꼬집는 장면, “애, 참 심하게 예쁘네”라고 혼잣말하는 장면, 김희애에게 인정받은 유아인이 기쁨에 들떠 한강다리 난간을 건반삼아 연주하는 장면들은 벌써 명장면으로 회자 된다.

◆김희애와 유아인의 화학작용=중년 여성들의 로망 김희애는 ‘아내의 자격’에 이어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애처로워 보여, 누구도 그녀의 일탈을 단죄하지 못할 것 같은 오혜원 역을 맞춤하게 연기하고 있다. 상대가 ‘아내의 자격’처럼 이웃집 기혼남이 아니라 실제로도 19살 아래의 청년이라, 그 간극을 매꾸는 것이 과제. 1, 2회를 통해 두사람이 처한 상황과 음악이라는 정서적 교집합이 설득력있게 그려져, 향후 로맨스의 무리없는 진행이 예상된다.

 그러나 역시 ‘밀회’의 최고 발견은 유아인이다. ‘성균관 스캔들’ 등을 통해 일찌감치 주목받았으나 적역을 만나지 못했던 그가 섬세한 표정연기 등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특유의 불안과 결핍, 순수한 이미지가 천재성을 알아준 스승에게 격정적으로 이끌리는 어린 피아니스트 역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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