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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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아’의 주인공 러셀 크로와 아내 역을 맡은 제니퍼 코넬리. 왼쪽 사진은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성경에 기록된 크기 그대로 만든 방주. [사진 CJ E&M]

인간세상에는 죄악이 만연하고, 창조주는 대홍수로 이를 심판하려 한다. 계시를 받은 한 남자는 거대한 방주를 준비해 자신의 가족과 모든 동물을 한 쌍씩 짝지어 태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수록된 노아의 방주 이야기다. 영화 ‘노아’(20일 개봉,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는 이를 토대로 감독이 자신만의 해석을 불어넣은 새로운 이야기다.

 ‘더 레슬러’(2008), ‘블랙스완’(2010) 등 고뇌하는 인간 심리에 천착해온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번에도 세계의 종말을 겪는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창조주로부터 선택받은 자일뿐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로서 노아(러셀 크로)가 겪는 고뇌, 나아가 방주에 올라 멸망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의 고뇌까지 주목한다.

 전반부는 창세기의 경이로움과 대홍수 직전의 혼란이 강렬하게 묘사된다. 성경에 기록된 크기대로 만든 커다란 방주에 암수 한 쌍씩의 동물들이 스스로 오르는 장관을 비롯, 창세기의 풍경을 블록버스터다운 볼거리로 구현한다. 성경을 바탕으로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대목도 있다. 인간을 돕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기괴한 괴물 형상이 된 타락천사들이 방주의 건설을 돕는 전개가 대표적이다.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앤서니 홉킨스)가 신비한 능력을 지닌 현자로 등장하는 것 역시 성경 속 인물에 상상력을 더한 부분이다.

 마침내 대홍수가 시작되면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노아는 단순히 창조주의 계시를 받드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노아의 결단은 방주에 올라 살아남은 노아 가족의 고통과 갈등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이들은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멸망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선한 의지를 회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삶을 택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팽팽하게 입장이 갈린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노아의 맏아들 셈(더글러스 부스)의 배우자인 일라(엠마 왓슨)다. 성경에는 일라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선 인류의 존폐를 향한 노아의 첨예한 고뇌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방주 밖의 인간세계는 대홍수로 종말을 맞이했지만, 방주 안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이 모인 용광로가 되어 펄펄 끓는다. 노아의 확고한 믿음, 생명을 지키려는 셈과 일라의 결기, 마음에 든 소녀를 방주에 태우지 못해 아버지를 원망하는 둘째 아들 함(로건 레먼)의 울분, 남편을 이해할 수 없는 아내 나메(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방주를 차지하려는 또 다른 인간 두발 가인(레이 윈슨턴)의 욕망까지 뒤엉킨다. 이 때문에 영화의 후반부는 방주라는 밀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공포물처럼 보일 정도다.

 누구나 다 아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이처럼 새롭게 만들어낸 건 분명 이 영화의 성취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 노아라는 인물을 해석하는 관점이 극단적으로 갈릴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 내 시사회에선 ‘노아는 비이성적인 광신도’라는 평까지 등장했다. 과연 노아는 창조주의 계시를 받은 충직한 인간일까, 그 자신이 심판의 중심에 서려 한 광신도일까. 15세 관람가.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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