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동북아의 세력 균형과 한반도의 평화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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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평화 정착은 북괴의 월남형 적화 방식에 대해 우리의 독일형 공존 방식을 어떻게 우세하게 하느냐 하는 전략으로 집약된다.
북괴가 공존보다는 「혁명」을 망상하는 한 그것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력이 월등히 우세해지는 도리 밖에 없다.
그럴 경우 북괴는 최소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력 배양과 병행해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정치 공세다.
공산주의를 거부한다고 하는 「부정」과 병행해 민족 공동체의 평화 번영이라고 하는 「긍정」의 논리를 제시해야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장기 전략의 수립이다.
북괴는 남북 회담이 시작된 이래 시종 일정한 전략의 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사건건 전략과 전술로 악용하려 했다.
그렇다면 우리측도 일관된 장기 전략과 작전을 수립해서 대응과 공세를 능동적으로 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장기 전략의 필요성은 제3세계나 공산권 또는「유엔」을 상대로 한 외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비동맹권에 이상이 일어나면 「리마」로 뛰어가고, 중공이 무어라고 그러면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유엔」이 이상해지면 「뉴요크」로 달려가는 대증 요법만으로는 충분한 대책이 되기 어렵다.
비동맹이나 「유엔」이 어떤 결의를 하든지 그것은 심리적인 영향 이상의 것이 못된다. 좀 더 의연한 자세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안 실질 외교를 도모할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외교의 주된 대상은 역시 미국일 수밖에 없다.
4대 강국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의 경우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서 우리 외교의 행동 반경을 확산하는 길을 중시할 단계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사이의 「시나이」 협정만 두고 보아도 「이스라엘」은 미국을 상대로 협정의 보증을 얻어냈고 군사 원조도 받아냈다.
제3세계에 대한 외교도 민간 「레벨」을 동원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4대 강국의 관심이란 어디까지나 그 지정학적 가치에 조준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때문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의 이해 대립이나 이해 일치를 주체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슬기가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강대국들을 적당히 「플레이·오프」 (Play Off) 할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여건을 우리 이익에 봉사하도록 이용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외교에는 무엇보다도 「이니셔티브」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서 장차 한·미 방위 조약에 근거해 작전 지휘권이 한·미 연합 사령관에 인계되고 한국이 그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의 대북괴 입장은 더한층 강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외교적 기선의 물질적 기반은 결국 자주 국방이다.
자주 국방은 북괴와 강대국들을 상대로 한 성년기 한국 외교의 평화 전략을 위해 가장 원초적인 기반이 되는 것이다.
자주 국방은 비단 병기 생산이나 병참 능력에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병기 체계·작전 개념·편제와 제도 등 모든 국방 능력의 자활과 강화를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이 모든 여건이 갖춰질 때 한국 외교의 선택 폭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우리가 쥘 수 있는 「카드」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그럴 경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의 합리적인 구상은 하나의 현실적 「능력」으로 투영되기 시작할 것이다.
【정정】21일자 일부 지역 본난중 「통수권」은 「작전 지휘권」의 잘못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세미나 참가자>
노재봉 교수 (서울대)
오기평 교수 (서강대)
이상우 교수 (경희대)
장두성 (본사 외신 부장)
유근일 (사회·본사 논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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