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경찰 3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0월21일로 국립 경찰은 창설 30주년을 맞이했다. 경찰 30년의 역사는 훼예가 교차하는 우여곡절의 역사였다. 초창기의 대공 투쟁과 혼란 극복으로 건국의 기초를 닦았으며, 정치적 격동기에는 권력의 시녀로 지탄을 받기도 했고, 근자에는 사회 부조리와 관련,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에게 투영된 경찰상은 상당히 일그러진게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사회의 질서 유지와 국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를 위한 경찰의 기여가 결코 과소 평가되어선 안될 것이다.
정부 수립, 6·25, 4·19, 5·16, 10·17로 표상되는 사회의 격동을 겪으면서 국립 경찰도 숟한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의 경찰은 공산당의 분열·「테러」·폭동 등 책동으로 인한 사회혼 란을 진압하는 힘겨운 일을 수행했다. 6·25 동란 중에는 군의 작전을 보강하고 공비토벌·후방 지원 및 치안 유지에 분투했다. 지리산 일대를 비롯한 공비 토벌 작전으로 3천1백61명의 경찰관이 산화하는 희생을 치렀다.
4·19와 5·16이란 사회 격동을 겪으면서는 많은 경찰관이 경찰을 떠나고 경찰의 기능도 축소되는 변혁을 겪었다. 그 이래 경찰은 좌표 정립을 못한 채 스스로 위축된 느낌마저 없지 않다.
특히 최근 극소수이긴 하나 경찰관의 치기배와의 결탁·밀수범 비호·탈세 묵인 등의 사건은 경찰의 명예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큰 안목에서 보면 이런 오점은 모두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탓을 모두 경찰에게만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경찰 불명예의 상당 부분이 경찰을 본래의 목적 이외에 이용하려고한 일부 정치인들의 책임이나 경찰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돌려져야될 줄 안다.
대부분의 경찰은 박봉과 과중한 격무에 시달리면서 맡은 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과로로 순직하는 일이 어느 직종보다도 많다는 사실은 경찰 직무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경찰이 수행하는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의 보호 그리고 사회 질서의 유지라는 기능은 국가기능의 원초적인 바탕이다. 이러한 중요한 기능을 맡는 경찰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게 돼서는 그 기능의 원만한 수행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국립 경찰 30돌의 의미는 지난 30년간의 영욕과 고난을 되새기자는 뜻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경찰상을 확립하느냐는데서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무엇보다도 경찰의 사명감이 제고 되어야 하겠다. 자기 희생과 국민을 위한 봉사의 자세가 확립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감이 몰각되는데서 국민에 대한 무시, 온갖 부조리 현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국민들이 경찰관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덕목은 친절이다.
친절하고 봉사적인 경찰이 있는 사회는 명랑한 사회의 첫걸음임을 경찰관들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경찰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뒷받침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한 뒷받침으로 경찰관에 대한 처우 개선과 수사비의 현실화, 수사 장비의 과학화 그리고 경찰 인사의 엄정이 기해져야할 것이다.
금년과 내년에 경찰의 수사비는 상당히 인상되게 되어 있으나 그것이 충분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경찰의 사명감 확립이 각종 부정 및 범죄 근절에 기초가 되는 것인만큼 경찰의 처우와 수사·운영비는 특히 모범적으로 현실화해줬으면 하는게 우리의 희망이다.
끝으로 경찰의 격무에 비추어 7백75대 1이란 인구대 경찰관의 비율을 낮추는 조치도 시급히 추진되어야겠음을 지적해두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