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효|가정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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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회의 변천과 함께 「효」는 새로운 「모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정은 한 사회의 단위로서뿐 아니라 인간생활의 기본적인 터전인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오늘의 시대가 지향하는 가정의 상, 오늘의 세대에게 기대하는 효행, 또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인의 문제등을 생각해보는「시리즈」를 엮는다. <편집자주>
가정이 사회구성요소로서의 단위라면, 가족은 가정구성요소로서의 단위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핵가족제도는 가정의 구성요소를 부부에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가정이 어떻게 부부만으로 이루어질수 있겠는가. 부부사이에서 생긴 자녀도 물론 가정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부모와 자녀사이의 관계로서 한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며 같은 논리로서 부부의 부모 역시 가정의 구성요소가 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있어서 결혼한 부부는 그들의 부모를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결혼한 자녀가 부모를 가정의 구성원으로 인정치 않는다면 혼인과 동시에 별거해 나가야하는데 여기에는 생각할 여지가 많다.
평소에 주례를 많이서는 편이기 때문에 결혼부부가 찾아오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강조한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시댁 부모를 친정부모처럼 섬기는 것이 당연하며 시부모도 며느리를 친딸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러자면 꼭 필요한 요건이 있다. 시부모와 신혼부부가 일정기간 동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들이 하나뿐인 탓도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아들·며느리와 동거하고 있다. 중간 중간에 아들식구에게 딴살림을 시킬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집사람은 『아들·며느리 분가시키는 것은 좋지만 손자녀까지 다 데려가면 어디다 재미를 붙이고 살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단둘만 남게되는 노부부의 외로움을 생각지 않더라도 신혼부부는 일단 부모와 일정기간 동거한 후 분가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장남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나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첫째, 가정에 따라서 가가례, 즉 가풍이 다른데 일단 시집을 왔으면 그 가풍에 젖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둘째 우리속담에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정은 안다』는 말이 있듯이 동거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정이 들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거시킬 며느리라도 최소한 6개월은 데리고 있다가 세간을 나게하는 것이 좋다는게 내 생각이다. 얼만전 어떤 제자의 부탁으로 그 제자 아들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던 일이 있었다. 아들은 미국유학중 이어서 식이 끝나자마자 도미했고 며느리는 절차를 밟는 4,5개월동안 시댁에서 살았다. 마침내 며느리가 떠나게되자 시부모와 며느리는 정이 들대로 들어 차마 떠나 보낼수가 없어 한참동안 울먹였다는 미담을 남겼다.
신혼부부를 대뜸 딴살림을 나게 하면 부모와 자식간의 정은 그만 단절되고 만다. 아들을 여럿둔 내친구 하나는 아들들을 전부 결혼 분가시키고 얼마전 막내아들을 결혼시키게 됐는데 이 아들은 신혼여행을 가서 전화로 세간살이를 모두 앞으로 살집에 옮겨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친구는 이 얘기를 전하면서 『여간 섭섭지 않더라』고 했다.
설혹 결혼직후 분가가 예정돼있다 하더라도 일단 부모를 찾아보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물질문명의 중독으로 『모든 것이 「비즈니스」다』는 관념이 뿌리깊이 박혀있지만 가정이란 모름지기 인간적인 정이 바탕을 이뤄야한다. 부모자식간·형제자매간·고부간에 의견대립으로 싸우는 일이 흔히 있게되지만 모든 것은 <이해>와 <인내>로써 극복될수 있는 것이다.
백인당중유태화, 즉 『백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가 참고 이해하면 화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효도라는 것의 현대적 의미가 따로 있을 수는 없지만 이해와 인내가 가득찬 평화로운 가정에서 부모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는 자녀-여기서 새로운 <효>의 의미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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